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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철썩'이라는 시인이 나에게 시집을 선물하더군요."

극장장이 잠시 사이를 두고 아야미에게 말했다.

"'김철석'요?"

"아뇨, 철썩, 김철썩."

"설마 본명은 아니겠지요?"

"나도 그렇게 물었더니 자신이 만든 필명이라고 했어요."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설명하던가요?"

"자신의 관 위로 흙을 퍼붓는 소리랍니다." 58

아야미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조심스럽게 포크로 접시를 더듬다가 마지막 양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자신은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극장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항상 뭔가 말을 걸면, 그 대답으로 세상은 흙을 한 삽 떠서 그의 무덤에 퍼부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신은 깊이깊이 묻히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염소처럼 매에거리며 길게 웃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는 시인이 아니니까요. 언어로 타인을 설득하는 일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니까요. 누가 우리의 얼굴 위로 흙을 퍼부으려고 하면, 우리는 얼굴을 돌리고 그냥 가던 길을 가면 그만이죠. 마치 알타이의 목동처럼,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고립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단 한 사람도 설득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고, 또한 그 누구도 우리의 무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혼자서 고개를 돌리고 아주 멀리 가버려야 한다는 의미잖아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 말이죠. 우리는 평생 동안 황야에서 양들과 별들만을 바라보며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별들은 죽고 다시 태어나고, 양들도 마찬가지겠조. 그러면 당신은 세상은 변함이 없노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슬픈 자의식조차도 마침내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건 너무나 고독해요, 아야미."

"그렇다면 고독하기 때문에 타인을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요?"

"왜냐하면 고독은 실패이기 때문이죠. 62 ( )"







이 책의 표지로 사용한 사진은 얀 페터 트립(Jan Peter Tripp)의 작품으로 현재 저작권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차후에 연락이 닿는 대로 저작권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소설 같아요. 

얀 페터 트립은 

자신의 그림을 골몰하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음을 알고 있을까요.  



배수아의 장편 소설을 처음 읽었습니다. 

설마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이해는 따위는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요?

나는 이 소용 없음이 이해할 수 없게도, 

괜찮아요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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