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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의의 <멀리 오래 보기>를 읽었다. 비평집이다. 작가와 책에 관한 리뷰인데, 어떤 관점을 통과한 리뷰는 그 원전보다 더 좋을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진실로 공감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동안 아렌트가 그 두꺼운 책에서 자신의 할말을 다 했는데도, 그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어렵기도 때문이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고닉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으면서 책의 중심을 향해 경제적으로 돌진한다. 비비언 고닉은 말을 낭비하거나 수사하지 않는다. 단촐하고 검소한 언어로 감동의 자리를 넉넉하게 확보한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해도 그를 통해 위대한 작가와 책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결과라는 통찰이다. 자유롭게 숨 쉴 필요는 주어진 것이지만 자유롭게 숨 쉴 권리는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 권력을 향한 의지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에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체화된 힘이다. 어떤 조건에거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그 도전을 자유롭게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그 도전은 해당 조건 속에서 저항해야 한다. 아렌트의 말처럼 "우대인으로 공격받으면 독일인이나 프랑스인, 세계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유대인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제 아렌트가 보기에 유대인은 스스로 역사에 부재할 수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행동력이 필요하다. 행동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정말로 행동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아렌트는 유대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핵심적으로 자신의 몰락을 몰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투쟁 없이는 사회적 부랑아로 남아 유럽의 경제 생활에는 포함되지만 문화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무시당할 운명임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괴롭힘과 억압, 파괴를 향한 인간의 내재적 충동이 위협당하면서 종속으로 변하는 극적인 예시다. 우리 시대에는 박해받는 흑인, 모욕당한 게이, 버림받은 여성들의 자유주의 운동이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주었다. 즉,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면 일어나 싸우든지 무릎을 꿇고 죽든지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면 일어나 싸우든지 무릎을 꿇고 죽든지 해야 한다. 

 

심금을 울린 말은 이것이다. 유대인이 유대인으로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에 처했던 것이다. 어떤 일을 싸워야 하고 어떤 일을 싸우지 않아야 하는가? 답은 바로 이것이다.

 

 

많은 싸움이 생각났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장연의 투쟁이었다. 

 

전장연 박경석의 자부심… “고통스러워도, 고통이 기쁨 아닌가” (hani.co.kr)

 

전장연 박경석의 자부심… “고통스러워도, 고통이 기쁨 아닌가”

1. 1983년, 경주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 추락사고를 당하다. 2. 1999년, 지금의 활동 기반이 된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다. 3. 2001년, 서울역 지하철로를 점거하고,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에 항의

www.hani.co.kr

“존중은 쟁취하는 것, 동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위대한 싸움을 응원한다.

 

 

 

 

 

그것은 나의 생활에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제 나의 무엇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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