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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어떤 일이 있어나.

 

1. 올해의 영화

헤어질 결심,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괴물을 보았다. 

 

올해의 영화는 <괴물>이다. 어떤 영화는 피곤을 무릅쓰고, 영화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동일하게 흘려서,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봐야 할 가치가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괴물을 만들고, 괴물이라 오해한다. 그리고 나중에 나의 몰랐음과 결백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러는,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비겁해지는 순간이 있어, 그 비겁으로 인해 다른 이가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 괴물의 그늘에서 나를 안온하게 두는 순간이 있다. 괴물이 되어 나를 자유롭게 둘지, 괴물 대신 자유로운 괴물의 손가락질 아래 편안하게 흘러가는 내가 아닌 시간을 산다.

 

이해하기를 그만두는 일과 이해를 끝까지 요청하는 일 사이에 어떤 피로와 파괴.

괴물을 자청하는 이들과 괴물이 되고만 이들과 괴물을 피하려다가 괴물이 되는 사람들. 

 

살아있음의 다행을 생각하며,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살아있음을 소중히 여기는 일을 떠올리며, 저기 애인이 집에서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을 생각했다. 

 

1. 올해의 장소

광주. 애인이 뛰어다니고 자랐을 장소를 가보았다. 비가 세차게 오는 여름이었고 함께 있어서 기뻤다. 

 

2. 올해 처음 시작한 것

농구를 시작했다. 시작은 언제나 단순하다. 농구를 좋아하는 애인과 조금 더 놀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공을 몇 번 주고 받고, 제법 잘한다고 해주어 그게 정말인 줄 알고 동호회에 들어갔다. 8월부터니까, 4개월을 했고 경기에도 나가보았다.

 

농구 연습은 단순히 공을 갖고 노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흰 선 안에서 공을 튀기며 다른 이의 공을 뺏고 내 공을 지키는 놀이가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웃기고 긴장되고 신날 수가 없었다. 수비 대형과 공격 루트를 배울 때에는, 배우가 된 기분이 들었다. 몸에 관련한 여러가지 지문을 익혀야 하는 배우, 내가 어디가 서 있어야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움직이는 장기의 말, 시야가 좁아지는 순간은 나와 공만 생각할 때 온다. 다른이의 상황을 보며 내가 서 있을 위치를 익히는 것. 나를 소리치고, 엉덩이로 상대를 밀며, 어깨로 버티고 박스 아웃을 하는 것. 무엇보다 무게의 공을 느끼고 밀어내는,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 여러 개의 심장이 코트의 저쪽에서 이쪽까지 뛴다. 농구를 하면 살이 빠진다. 단백질이 많다는 두유를 먹기 시작할 무렵 손가락 골절됐다. 뼈가 이렇게 약하고 부서지기 쉽다니. 기부스 한 달 처방을 받았다. 

 

3. 올해의 이해

부모님의 농사를 도왔다. 일같은 일을 며칠이나마 할 수 있었고, 이따금 도울 수 있었다. 그건 부모님의 하루를, 하루하루로 만든 인생의 일부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서울 깎쟁이가 다 된 내가 절대 알 수 없었던 후진 노동을, 나아질 여지는 커녕 이것이 최선인 노동을 함께했다. 아버지는 나를 일하는 노동자로,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같은 노동을 하고 같이 땀을 흘리고 말 수가 같이 줄었다. 말이 없다고 유대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다. 낮잠을 잤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을 물어봐야할지, 무엇을 궁금해야 할지 몰랐던 이야기들이었다. 일하는 옆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동질감. 그것이 물음표가 되는 순간들이 있더라. 정말이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아서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많은 불화와 이해할 수 없음의 사이에서 평생에 얼마나 필요한 진짜 '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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