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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약을 새롭게 한지 8개월이 되었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기서 '좋아졌다'라고 말하는 건 어떤 뜻일까? 좋다는 것은 아마도 방향이라고 해야겠다. 이건 어떤 가치가 아니라, 방향일 뿐이야. 보통 사람의 쪽으로, 외양이 거의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계속 피부가 나빴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이제 뚜렷하게 발진이나 각질이 일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이 가렵지 않다. 가렵지 않으므로 가려움을 참을 필요도 없다. 이것은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가려움을 참는데 온 힘일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제 그 힘을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자거나.

 

그러나 아직은 일반인이 아닌 곳도 있어, 얼굴이다.

 

나와 대화할 때 사람들은 눈을 비빈다. 어떤 사람들은 슬그머니, 그래서 그게 자신의 일인양 포장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활기차게 그런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듯이 말이다. 그것 또한 친절의 하나라는 것을 안다. 하여간 슬그머니 그러거나 크게 그러거나, 나도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눈을 비비는 사람들을 보면 굴뚝 청소를 한 아이들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건 철학을 소개하는 에세이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거멍을 잔뜩 뭍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마주 보았는데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닦더라는 이야기... 거멍을 잔뜩 뭍힌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서는 자신이 거뭍한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알지만

약을 새롭게 한 후 결막염이 거의 늘 있어서  눈 주위에 각질이 일거나 종종 눈꼽이 낀다. 그것은 아주 작지만 눈에 띈다. 없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에게는 불가피하다. 

 

눈을 비비는 사람 앞에서 나는 눈을 비비지 않는다. 당신들의 눈은 지금 괜찮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게 알려준들 내가 지금 눈 주위를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깨끗이라는 말도 역시 이상하다. 가치가 있는 말은 아니고 그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의 방향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깨끗의 반대는 더러움이니까. 

 

그러나 나와 매일같이 마주하는 동생이나 애인은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모습이, 내가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인은 종종 내 머리칼의 비듬을 떼어준다. 내 머리칼이지만 각질을 알 수 없다. 애인은 아무렇지 않다. 발견했으니, 잠시만. 이라는 식이다. 나는 그게 창피하지만 이건 그냥 탈락된 피부껍질일 뿐이야. 라고 말한다. 

 

나도 물론 보통 사람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순간'만 그렇다. 늘, 매일, 나는 자기전에 눈 주위를 닦고, 안약을 흘리고, 눈물약을 넣고, 다시 약을 바른다. 그러나 약은 하루를 유지할 수 없다. 하루를 유지할 수 없는 나는 다시 각질이 일거나 눈꼽이 낀다. 바람이 불거나 에어컨을 맞거나 건조하면 더욱 그렇다. 나의 매일매일. 그러나 구태여 나의 여기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이것이라고 하자. 나의 이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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