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더라, 오늘 혈관이 참 좋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얼굴이 좋네요. 하는 말을 들은 것처럼 괜히 좋아서, 두 번 뽑으시는구나, 피검사를 하며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키가 1cm 줄어든 것도 봤다. 무척 고치고 싶었다. 양말도 신었는데! 어제 새벽 전화를 잘못걸었다. 이크,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오는게 아닌가 모른척 끊을 수도 없고 받아버렸다. 턱이 후끈거렸다. 새벽에 잘못 건 전화에 깨서 기분이 안좋았을텐데. 조곤조곤 얘기를 하는 동생이, 형 그런데요 이 책은요 하는데, 그 오분이 참 누군가 내 시간을 가져가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가져간다면 아무말 없이 모두 뺏길텐데.
둘째가 태어났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세수 할 때쯤 태어난 것 같다. 내일 아침 세수 할 때는 어제 세수가 생각 날 것 같다. 비누에 손이 미끈거릴 때, 얼굴에 거품이 일 때수돗물 쏟아지듯 세찬 울음소리로 가득해졌을 공간들. 내일 나는 잠에 덜 깼고, 아이는 조용히 보에 쌓여 자고 있다. 이모는 비가 온 다음날을 좋아해. 나는 너의 엄마와 같은 나이란다. 네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이모라는 말을 알려줄게. 아주 작은 신발을 주고 싶다.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네가 신었던 신발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작고, 잠시만 신을 수 있는 것으로.
나무는 키가 컸다. 연두색이 촘촘이 가지위에 앉았다.햇빛은 먼 곳에서 내려왔다. 머리카락이 점점 따뜻해진다 집에 돌아오면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실패를 증명해냈다는 것. 돌아다니면서 얻은 진실은 이것 하나였다. 서류 몇 개를 꺼내서 죽죽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버스가 와서 미쳐 다 버리지 못했다. 서점에서 운 좋게 발견한 초판책을 꺼냈다. 오래된 작품, 나온지 근 이십년이 되가는 단편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단편 하나를 읽고 창 밖을 구경했다. 사실 뭐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태평한 것이었다. 무엇이 지나갔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햇빛이 벌써 따가워 미간이 좁아졌던 인상만. 건너편에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탔는지 모르는 치마 짧은 여고생. 게임을 지운 엄마 존나 짜증난다고 투덜거..
어쨌든 일은 해야 합니다. 이놈의 세상은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음. 지난 10월부터 11, 12, 1, 2, 3월 아주 잘 놀았습니다. 12월부터 빵 조금 보태서 한 달에 80~100권 읽은 것 같아요. 남은 것은 없습니다. 뭐라도 써야지요. 짧게 여행을 했고요 9월 시를 들었고요. 10월 11월 서평 썼습니다. 열린책들, 예스24, 알라딘, 민음사, 그리고 곧 자음과모음도. 나를 써요. 이력서와 면접의 날들. 마주보고 있는 웨딩홀과 모텔. 신해욱 시집을 읽고 앞표지를 떠들어 봤던 기억. _이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아주 좋은 감탄사. 아주 좋은 타이밍을, 당깁니다.
장날에 비가 왔다. 꽃이 조금 더 뜸을 들이고 피지않을까. 비가 봄을 늦추지 않을까 반가웠다. 무엇을 살지 아는 마음과 무엇을 살지 모르는 마음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차박차박 걸었다. 비가 와서 좁디 좁은 길은 더 못났다. 머리에 빗방울을 이고 계신 할머니들 언제부터 가늘은 비에 젖고 계셨나. 천막 칠만한 여력이 없는 도로 인접한 인도, 할머니들은 등 뒤로 오가는 차를 마주하고 앞으로는 쑥이니 달래니 봄동과 함께 송글송글하다. 자신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애처로움이 길마다 있어 우산을 접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빨간 다라에 담긴 프리지아는 여전히 한 단에 천원이고 그 옆에는 가래떡이 삼천원이란다. 좌판 멀찍이 서 있다가 '노가리 맛있어요'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제야 배와 등을 나란히 한 노가리가 들어..
배가고프다. 고프다 앞에는 무엇이 와도 어울린다. 세상에! 고프다는 혼자 있어도 어울린다. 아이고야!고프다.
화창한 주말이라, 빗소리가 필요해서 지글지글지그ㄹㄹ. 전을 부쳤다. 반죽을 개고 김치를 썰고 팽이 버섯도 좀 썰어 넣고 깻잎도 잘라 넣었다. 큰 양푼이에 가득 반죽을 하니, 한 시간 넘게 전을 부치게 됐지 뭔가. 열너덧장은 넘게 나올 듯 해서, 한 김에 빌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전을 부치며 '어머나, 왠 전이에요?'하는 반응부터 '그런거 안먹어요' 라는 대답에는 어쩌나, 찢어 먹었다. '요새 이런걸 돌리는 사람도 있네' 힘을 냈다가 '아; 고맙습니다'라는 아주 미지근한 대답까지, 전 주는 상상을 했다. 이 빌라에는 총 11세대가 산다. 옆집과 우리집을 빼면 아홉집. (옆집은 주인집으로 사이가 나쁘다) 한 장씩 노나주면 딱 좋겠구나 열심히 부쳤다. 10장을 부칠때 쯤 처음에 부친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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