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이고 이곳에서는 너무 멀리까지 보여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 손바닥만한 하늘이 답답했던 것 같은데 마음은 참 이상하지. 거실 밖으로 하우스 철창 너머로 우유곽 같은 아파트가 걸린다. 새언니는 배가 불러서 왔다. 그게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할말도 없으면서. 불가피하게 가까운 거리는 서로를 괴롭게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나의 거리를 지키는 것은 주변을 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큰엄마네는 강아지가 두 마리 태어났고 어미가 죽었다. 졸려서 잠이 드는게 귀여웠다. 친구의 딸은 무럭무럭 커서 이제 제법 자매티도 난다. 잘 지내라고 하지 않아도 잘 지낸다. 나는 이제 '우리'나 '당신'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 나의 말은 반도 넘게 죽었다. 가끔 머릿속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글자씩 말하는게 들린다. 그걸 잇..
이제 맨 바닥이 추워서 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코피가 일주일째다. 점막이 약해져있는지, 오른쪽이 괜찮으면 왼쪽이 상하고, 왼쪽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상한다. 눈을 반쯤 뜨다가 누웠다. 잠이 모자랐던 건지,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틀어놨던 노래가 들리지 않더니, 점차 들리면서 깨는 걸 알았다. 마감이 두 시간 남았다. 두 시간을 남기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운이 좋았네. 내가 쓰지 않았으니, 당신이 될 테니까. 라고 생각하고, 남은 파이를 먹는다. 생각났다. 목마하자, 하고 남자가 아이를 들어 올렸다. 아이의 뜻없는 기분, 소리가 이어 나오고 뒤이어 여자가 걸어나왔다. 나는 아주 가깝게 지나갔다. 아주 가까웠지만 부딪힌다고 해서 가까워질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이 내게로 오..
드물게 팔다리를 잡아 끌던 침대가 있었다. 침대 머리로 끌고가거나 다리를 침대 아래로 데려가곤 했다. 더 끌어 당기면 어디 하나 찢어질텐데, 말을 하지 못했고 답답했고, 끈질긴 힘이었다. 버둥대다가 일어나면 어디 벗어 날 수 없는 210*180의 매트리스 위에 '잘' 있어서 분했다. 벌써 십년전인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머리채를 휘어잡아 끄는 시간을 만나 뒷머리가 욱씬거린다. 머리채가 뽑혀나가지 않게, 그러나 내 온몸이 끌리도록 움직인 힘은 말하지 않아도 비현실적이지만. 나는 꼬박 한 시간 왼쪽 머리채를 잡혀 끌려다녀야했다. 무심한 팔은 그 억센 팔을 잡지도, 물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웠다. 운동을 다시 해야지, 걱정되는 가을무렵이다. 종이접기는 늘어서 이제 꽤 정교하고 복잡한 별을 만들 수 있다...
당신에게 이 시들을 바친다고 나는 쓴다.롤랑 바르트는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헌사를 바친다고 말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당신에게 주는 것은 (내 목소리에 의해) 나의 육체인 동시에 당신이 그 육체로 만드는 침묵…" 그리하여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내미는 실오 라기만큼이나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랑하는 이여, 줄 것이 없다. 당신을 위해 부른다고깊이도 믿었던 이 어리석은 노래들밖에는.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 8. 22 두 개의 구슬이 멈추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다른 구슬의 멈춰있는, 혹은 금방이라도 구덩이로 빠질 것 같은 경로를 바꾸기 위해 어디선가 달려온 다른 구슬이 있었다. 그 구슬은 부딪히면서 바뀔 자신의 경로를 알지 못한채 다가..
머리가 길고 차분한 사람이 토익책을 펴놓고 아동자료실에 앉아있었다. 의자는 키가 낮은 나무 의자.글씨가 잘던 책을 펴놓고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작업용 회색 장갑을 끼고 책을 끼우기 시작했다.얼굴도 참 하얗지, 토익책을 봤는지, 가뜩이나 더 낮은 아이들 서고에 허리를 굽혀서 책을 꼽고 빼고 했다. 지하철역 밖에 나오자 눈이 부시고 고맙다는 말이 들렸다. 어느새 쥐고 있는 전단지. 길을 걸었다. 거북이를 접었다. 날개를 펴야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폈는데, 한쪽이 찢어졌다.무슨 생각을 하면서 폈지. 길가가 금요일 같다. 휘어진 교통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마음이 아주 컸으면 좋겠다. 빵을 먹을 때 크림이 항상 많다. 손에 닿는게 싫다. _ 님포 매니악은 올해 두 번째로 기억남는 영화다. 감독은 겨우 낚시줄..
요새 나는 클렌징 크림 생각으로 꽉 차있다.'얼굴을 지우고 싶다'매일 매일 지워도 보이는 것은 다시 내 얼굴이겠지만, 요새는 그런 생각으로 산다. 얼굴을 지우고 싶다. 는 느낌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건 너무 크다.바닥이 없다는 것처럼 깊고 무거워서 얼굴을 얼마나 지워야 할지 모르겠다.얼굴을 지운다는 느낌에 지치고 싶지 않은데, 그 통은 보자마자 질리게 만든다.게다가 1+1로 파는 건 정말이지 어떤 날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단지 얼굴을 지운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서 필요도 없는 것을 사야 하나, 세안 할 때 어떤 비누로 한 번, 클렌징 폼으로 한 번 더 한다. 그만큼 해서 지워질 만한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세수를 두 번 씩하는 건 팔도 얼굴도 괜한 노동을 하는 셈이다.게다가 아..
친절한 복희씨를 읽다가 일어났다 전철이 두 번 왕복하는 동안 소년이 온다를 두 번 읽었고신림을 지나갔다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리고 돌아왔다 비가 섞인 바람이 건너편 집 청소기 소리와 함께 들린다어젯밤에 본 영화가 뭐였지, 102호에선 시끄러웠고 세시가 넘어서 자는 습관이 고쳐지질 않는다얼린 떡을 언 채로 먹는다 어젯밤은 정말 편했다 고를 수 없는 것이 없었고 먹을 수 없는 것이 없었다친절한 눈빛들 유복에 대해 생각한다 고층 사이로 간신히 달이 보였고기다리는 동안 고꾸라져서 자는 사람과 그 사람 손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길게 흐르는 걸 보았다옆에 있었지만 혼자 버스를 탔다 그는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잘 마른 하늘에, ___ 하늘에 빨래를 널어야겠다
이장혁-나무 순해졌나, 4월이네. 목이 따뜻한 지나간 계절이네. 이곳은 비가 오네. 쏟아지는데 빨래를 널었네. 그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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