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44살이다. 44살의 남자는 어떤 몸과 마음을 갖고 있을까? 우선 그의 영혼은 그가 머물기 좋아하는 시절의 것 같다. 스물 두살의 것 같기도 하고 18살 인 것 같기도 하며 37살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를 말할 때면 영락없이 마흔 넷이다. 그는 가능한 웃으려고 하고, 많이 웃고, 장난을 친다. 그럴 때면 나는 그에게 몇 살이냐고 묻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숫자 넷을 만들어 앞으로 한 번 뒤집어 한 번 보여준다. 팔은 꼭 45도의 각도다. 왜 그렇게 귀여운 모양으로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그런 모양으로 나이를 말하는 사람이 될줄 알았을까? 그것도 마흔 네살에. 자신의 아주 귀여운 구석을 꺼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마구 귀여움을 받는,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밤톨 ..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합★체를 보았다. 포스터만 보고 농구에 대한 뮤지컬인 줄 알고 예매했다. https://www.ntok.go.kr/kr/Ticket/Performance/Details?performanceId=266234 국립극장 - 합★체 www.ntok.go.kr 크게 잘못되었고 농구는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주어진 조건 '키'로 인한 '차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공 없이 농구를 하는 연기와 춤, 거기서 키가 작아 공을 패스받지 못하는 쌍둥이의 애환이, 이기기 위해서는 키 작은 아이들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옮음'으로 발현되는 갈등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난쟁이 아버지 대부터 자리잡은 차별과 소외가 있었고, 아이들이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것을 끊어내고자 애쓰는 수련이 나온다. 책을 극..
"그가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 즉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카이사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절대로 해당될 리 없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카이사르는 인간, 즉 일반적인 인간이니까 삼단 논법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카이사르, 즉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항상 다른 모든 존재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엄마와 아빠, 미짜, 볼로자, 장난감들과 마부와 유모와 까쩬까와 함께한 바냐,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기쁨과 슬픔과 환희를 간직한 바로 그 바냐였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줄무늬 가죽 공의 냄새를 카이사르가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카이사르가 어머니의 손에 나처럼 그렇게..
#요양 8월을 정리한다면 요양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반차와 연차를 써가며 버텼고, 버틴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이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 아팠던 나날을 지나 9월도 이제 중순. 물론 지금도 엉망인 것은 여전하다. #돈과 건강 이 많아 본 적은 없지만 돈과 건강은 웃음이 날 정도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돈 몇푼으로 당장에 찾을 수 있는 건강 따위는 없다. 매일의 나날이 오늘의 건강을 만든다. 최대한 건강하게 살기로 했다.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건강하자. 건강한 가운데 작은 행복을 느끼자. #배우기 작은 거라도 지금 시작하고 꾸준히 해보자. 이건 언제나 진리같다. 수화를 배워보기로 했다. 줌 강의로 들으려는데, 오늘 처음 듣게 되겠다. 그리고 또 무..
그와 있으면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 갔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만남의 목적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는 그와 도모하고 싶은 미래나 도달하고 싶은 관계가 없다. 그냥 지금이 재미있다! 목적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미래를 생각하고 안부를 물은 것은 아니었다. 나의 소임은 아주 예전에 안부를 물었던 것으로 끝났다. 그저 오늘이면 오늘, 주말이면 주말, 그날을 잘 보내는 것이 이 만남, 혹은 모임의 목표였다. 앞으로 그 목표가 무엇으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그렇다. 혼자 배구를 하기 위해 좋은 벽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하면 그가 웃었다. 전혀 웃기지 않은 이야기가 여기서는 웃기는 일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으로 왜 즐거운가. ..
나는 그날 몇 가지 되도 않는 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농구를 가르쳐 달라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나눈 곳이 농구장이 근처였고, 훌륭한 체육관과 많은 농구 골대가 있었다. 농구는 그가 거의 유일하게 하는 활동이었다. 혼자 할 수있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원하지 않아도 팀을 짜서 운동하게 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니 그게 운동의 언어인가 보지. 누가봐도 월등히 잘 할 것 같은 외관과 달리 나중에는 같은 팀에게 실망을 안겨준다고 했다. 농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좀 같이 해보자고 말을 건네는 것은 그 밑에 깔린 저의를 봐 달라는 말이었다. 대학생도 아니고 서른이 지나서도 친교의 언어에는 전진이 없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그건 거의 명백하게 같이 좀 시간..
그는 생각보다 노인이 되지는 않았다. 얼핏 봐서는 수년 전의 어제와 비슷했다. 여전히 키가 컸고, 어깨가 넓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거나 찌지는 않았고, 어떤 뼈는 나의 살과 뼈보다 더 두꺼워 보였다. 그가 말하길 나는 좀 말랐다. 그때보다 3,4키로 정도 빠졌으며 운동을 한 이후로는 잘 찌지 않는다. 나는 40대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이전에도, 40대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때 우리 중 실제로 40대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1년 치의 말을 하루만에 했다고 했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았을까? 오랜만에 만나서, 그 시간을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일 수 있고, 혹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을 수도 있다. 자신이 몇 년..
일년에 한 번 정도 생각을 했다. 뭐하고 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잔뜩 웃겨줄 수있는데. 같이 웃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말았다. 일년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락할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안부가 없더라도 잘 지낼 것이고, 잘 지낸다는 안부를 들어도 그 이상 할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꾸물대다가 시간이 지나서, 어느덧 나는 그 분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는 이 나이를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가끔 힘들고, 조금은 지친 것 같고, 철이 조금은 든 것 같고, 무모한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조금 알게 되었다. 예쁜 종이를 500매 정도 사다가 자기 전에 하나씩 유튜브를 보며 접는다. 일주일 전에는 바다거북이, 어제는 카멜레온..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가면‘이라는 게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어빙 고프먼,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중에서 #총평: 오열 사회와 세대 속에 우연히 존재하게 된 나, 나를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관객으로 있을 수 있어서 기쁘고 극장을 나와서 실존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이야기. #세대와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나'로 사는 것이 가능한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극이었다. 사회에서 나를 연기한다는 것, 나라는 본질, 정치와 개인, 정치의 본질, 자본주의, 세대갈등, 여성, 장애, 이민자등 다루고 있는 면이 풍부해서 다면적으로 리뷰할 것이 많다. #정동극장의 선택 연기, 음악, 무대 심지어 좌석까지 모두 훌륭하다. 20대 후반부터 추천하며, 나이가 많을수..
역시 아무 정보 없이 본 뮤지컬. 그러나 최애 뮤지컬이 되었다. 행복한 뮤지컬이었어. 셰익스피어를 싫다고 말하는 넘버에서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ㅎㅎㅎ국민작가를 싫다고 말하는데서 오는 묘한 해방감. 뮤지컬을 패러디 하는 노래도 좋았고, 배우부터 앙상블까지 모두 좋았던 극이었다. 가사 번역도 재미있었다. 한 가지 나빴던 것은 내 자리... #강필석 배우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굉장했다. 셰익스피어를 싫어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부분에서도 '나쁜'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강필석 배우님이 싫어한다고 말하면 상처가 덜 될 것 같은 느낌. 동생의 재능을 높이 사지만 나를 믿고 따라와주지 않는 동생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형의 모습도 사려깊게 연기해서 너무 좋았다. 노래에서도 성품이 묻어나는 걸까? 계속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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