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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자이언티, <꺼내 먹어요>










내일, 미래, 10년 후... 이런 말들 앞에서 주춤합니다. 이런 시간의 지칭은 2사분면으로 뻗어나가는 그래프처럼 언제나 조금 더 성장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이 세상의 조금 더 큰 단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아닐까? 나이를 먹는 것의 이유는. 그러나 나는 피곤이라는 단어를 알기 위해서 지금 나이를 맞는 것 같습니다.분기(세상에, '분기'라고 이야기하는 작태를 보십시오) 지날수록 극명하게 알아가는 것은 '피로'뿐 인것 같습니다. 모든 성취, 환호, 우려, 실망보다 먼저 오는 것은 다름 아닌 피로인 겁니다. 대단한 피로였어. 다시 없을 피로였어, 지루한 피로야. 오늘 피로 한잔 어때? 알고 있는 단어의 대부분은 이 '피로'를 수식하기에 이르렀지요.

라임도 플로우도 없이 '피로'를 연달아 뱉다보니 체면을 차리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찌든 사람은 또 아니라며. 불현듯 모든 요일, 에 '요'자가 빛날 요자라는 것을 알았던 때가 떠오르는군요.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인가! 선현의 지헤, 우리 사는 시간을 아름답다고 이토록 그려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요일의 90%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금요일 밤과 토요일 오후까지 뿐입죠. 이 뜻을 알고 동의했을 시절은 필시 백수일 때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형용을 일하는 중에는 눈치도 챌 턱이 없는 것이지요.

사람이란 생리적으로 보잘것없고 또 대부분 무식하고 조잡한 데다가 극도로 불행하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도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일을 해야 합니다 - <벚꽃 동산>중에서 뜨로피모프 曰

다시 피로로 돌아옵시다. 피로가 쌓일 때면 나는 벌레처럼 작아져, 어린시절 아끼며 놀았떤 공벌레처럼 몸을 완전히 말아 뜻없이 5X5cm가량을 굴러다니고도 싶습니다. 아뿔사, 공벌레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방어자세일텐데 미욱한 나머지 다섯살 적의 유희만을 기억해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공벌레여, 심심할 적에 몸을 말고 움직이기도 한다고 대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마음 쓸 여력이 없어, 공벌레가 혹시 줄 지 모를 가책도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아스팔트는 아플 것 같고, 흙 위에서라면 좋겠지만 곧장 떠오르는 것은 아스팔트나 보도 블럭 위니, 생각조차 옴쌀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 같군요.

이렇게 퇴행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좀 위험합니다. 월요일이 코앞이라서 그런듯도 하죠. 이럴 때 처방이 필요합니다. 의사나 약사의 전유가 아닌 처방. 당신에게도 알려주겠습니다. 그럴 때 "체호프"를 읽으세요. 배의 근육을 좀 느끼고, 얼굴을 좀 움직입시다. 체호프는 제가 알고 있던 웃음중 가장 큰 것을 선사했습니다. 웃음은 몸의 방향을 틀고, 마음을 털어넙니다. 마음 빨래 한 번 하시죠. '그럴 때' 제가 꺼내 먹는 군것질 같은 책. <벚꽃 동산>입니다.

로빠힌: 어제 극장에서 굉장한 연극을 보았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류보비 안드레예보나: 아마도 우스운 건 없었을걸요. 당신은 연극을 볼게 아니라 차라리 자기 자신을 살펴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으며, 또 쓸데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벚꽃동산>은 누군가의 터전이고, 또 누군가의 터전일 곳입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과 살고 싶은 사람이 만나 이루는 각축에, 의미인듯 아닌듯 둥둥 떠다니는 말들이 이렇게 웃깁니다. 누구나의 벚꽃동산이 있고, 지금 가지지 못했더라도 하나쯤 마음에 바랄 벚꽂동산이 있을겁니다. 밀려나고 있나요, 혹은 올라가고 있나요. 밀려나는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의 벚꽃동산을 향해 떠나는 항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코미디의 첫 번째 조건은 현실을 비틀어 웃길 것. 씁쓸하게, 그러나 너무 아프게는. 세상에 웃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욕대신 웃음을 날리고 책을 덮읍시다. 대개 피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들에게서 기인하는 거니까요. 어쩌다 보니 피로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왔지만, 실은 군것질에 대한 이야깁니다. 피로를 날릴 노래 하나 책 하나는 군것질처럼 손 뻗으면 곁에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아 그러나, 이 비기도 때때로 였으면 합니다. 군것질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충분한 때가 당연하게 오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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