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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너에게-편지를-써


우리가 '나는'을 발음하고 '너'를 이야기 할 때가 되면, 처음 시작했던 말 '나는'은 사라진다. 우리의 입은 하나이고 단 하나의 발음을 한 순간에만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차례대로 발화된다. 


너에게 '나는'을 이야기 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너에게 '나는'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해'라는 말이 밀려오는데, 너는 '사랑해'까지 듣지 못한다. 언제나 '너는'을 이야기 하기 위해 '나'를 먼저 시작했는데, 너는 그저 '나'만을 듣는다, 듣지 않는다...너는 언제까지 거기 있어 나 이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네 앞에서 있어 이 말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한꺼번에 이야기 할 수있다면 좋겠지만, 한번에 울리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나 가끔은 한꺼번에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해할 때도 있다. 운다. 그런 날을 떠올려 보면 이 비루한 몸에도 인간 이상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하게 됨으로써 기쁘고 이상한, 조금은 슬픔.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울 수는 없기 때문에, 노래에 기울여 울음을 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에게 편지를 써 너에게 나는 편지를 써 편지를 나는 너에게 써 편지를 나 써 너에게 "


'나는'을 발음하고 그 소리가 사라진 후에야 '너'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당연한 세계에서 그녀는 목소리는 '너'를 지나 '편지를 써'라는 말 이후에도 '나는'이라는 소리를 남긴다. 밀려오는 목소리, 노래가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말들이 부서져 시간에 떠돈다. 저 검은 옷으로 가린 몸 전체가 구멍인가. 그 구멍마다 단어가 울리고, 그 울림이 남아 '나'를 다 잊은 후에도 '나'를 꺼낸다.


그녀는 말을 얼마 하지 않았는데, 남기면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살고 싶어요.' 아니, 그녀는 '노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염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야기 했다. 그렇게 들렸다. 그녀, 사는 것과 노래하는 것이 동시에 흐릿해지는 삶이길 바란다. 무엇 하나가 먼저 끝나지 않기를. 그녀는 69년 생이고 쉰을 곧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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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의자와 검은색 실내의 검은, 무대의 조명은 여기까지 온다. 흰-네 팔을 잡은, 내 손의 뼈가 잘 보였다. 뼈구나. 마디 마디, 뼈일 것이었다. 내가 움직이는 뼈, 네가 만지는 뼈, 네가 소리를 내는 뼈. 언젠가 나는 정말 뼈일 것이고, 뼈가 될 것이다. 


그 전을 생각한다. 그 전까지 많이 만져야지. 많이 잡아야지. 많이 쓰다듬어야지. 정말, 내가 뼈인 것을 너 모르게 해야지. 


눈이 온다는 말을 생각한다. 귓속에 내리던 눈, 봄이 여름에 가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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