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흑백 4- 이준규

_봄밤 2016. 1. 10. 22:20

흑백 4



이준규




 선인장과 낮과 색안경과 연고의 사이에 있다

 버스와 치과와 헌책방과 학원과 행상과 좌판과 커

피와

 김치찌개와 초인종과 나뭇가지에 걸려 한 시절 보낸

비닐과

 오후의 낙지와 오전의 화장실의 발레리와 자개장과

비단과

 백조와 향수 사이에 있다

 여성은 옷을 입고 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유리에 비친 얼굴을 본다

 허리가 나쁘다

 잃어버린 열쇠를 닮았다

 고통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낱말과

 모음으로 끝난 체언에 붙는 조사와

 성장한 뒷모습

 시계를 보면 항상 시간이 있다

 그 시집에는 일상을 드러내는 어휘가 많다

 밥이 다 되었다





이준규, 『흑백』, 문학과지성사, 2008.







그만의 스타일이 자리잡는 이후의 시집이 물론 더 좋다.

그러나 시작은 불안해서 좋다. 

기존의 말과 그의 말이 섞여 싸운다. 이후를 점쳐 볼 수 있다.


흑백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화장실의 발레리'. 그라면 당연히 발레리를 생각했겠지만 

나는 벌레가 더 먼저 생각났고, 화장실의 발레리 혹은 벌레 둘다로 읽히는 단어는 

어쩐지 발레로 빠져나가 자개장과 백조와 여자로 꺾는다.


그래서 이런 구절은 얼마나 좋은가. 

'성장한 뒷모습'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복사저포기-송재학  (0) 2016.02.07
내부의 안부-김소연  (0) 2016.01.24
대명사 캠프-김승일  (2) 2016.01.04
파도-이병률  (0) 2015.11.16
봉인된 지도-이병률  (0) 2015.1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