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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집-정재율

_봄밤 2022. 7. 7. 10:25

 

투명한 집 

 

정재율

얼음 속에는 단단한 벽이 있어

나는 그 너머로 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다

자꾸 무너지는데도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아이처럼

 

인기척이 느껴지면

사라지는 벌레처럼

 

주머니엔 사탕 봉지가 가득하다

 

끝이 닳아 버린 운동화와

홈이 맞지 않는 문턱들

 

그 아이의 사정은 모두가 알았다

 

커튼을 쳐도 들어오는 빛처럼

 

아이가 아픈 이유는

집에 큰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고

 

얼음을 탈탈 털어 먹으며

이야기하는 이웃들

 

아이는 나뭇잎을 주워

주머니 속에 구겨 넣는다

 

외투 밖으로 삐져나온 소매를 

안으로 넣으면서

슬픔이 뭔지도 모르고

그새 자라 있다

 

창문이 깨지는 순간은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과 비슷하고

아이가 바깥으로 밀려난다

 

영혼이

그곳에 있는데

 

귓속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유리알 파편처럼

 

집이라는 건 다 부서지는데도

자꾸만 모으고 싶어진다 

 

 

정재율,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민음사, 2022.


 

 

"영혼이/ 그곳에 있는데"

 

 

산문처럼 읽히고 영화처럼 지나간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있다.

"그 아이의 사정은 모두가 알았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것이니까.

 

읽고 싶은 시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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