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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와 몸의 교양

고카미 쇼지/유유/2019

 

중학교 다닐 적에 한 놈이 "너 지금 이렇게 서 있어." 하면서 한데 웃고는 내가 서 있는 걸 따라서 한 적이 있다. 배가 앞으로 나오고, 어깨가 뒤로 꺾인 자세. 왜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서 있는 줄도 몰랐다. 무척 부끄러웠지만 알려줘서 그 놈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이렇게 비웃음을 사기 전에, 왜 아무도 제대로 잘 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걸까? 그 이후로도 제대로 서는 법 같은 걸 알려준 이는 없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어떤 자세, 어떤 발음에 대해 배워본 적 없는 건 계급의 문제라고. 이런 확신은 불경스럽지만 90%정도의 확률로 나의 부모님도 어떤 자세와 발음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배우셨더라면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을리가 없으니까. 바르게 서는 자세라면, 우리 고양이에게라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여러 사람을 만났고, 특이하게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너무 크게 뻗쳐 나가 분수처럼 산발해서 중요한 얘기를 해도 시끄러웠고, 어떤 사람의 말은 상대방에게 가기 전에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 말은 잘 도착하고 있는 걸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서점에서 보게되었다. 연출가인 저자가 배우 지망생과 일반인에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정리한 책이다. 

 

실제로 연극하는 이들이 목을 푸는 방법, 몸의 긴장을 푸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방법등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적혀 있다. 연극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소한 교본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혼자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여럿이 함께 참여애햐 하는 부분이 많다. 

 

책에서는 발음이 좋지 않은 이유를 3가지로 꼽는다.

 

1. 신체 기능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경우

2. 말하는 훈련이 부족해서

3. 소중한 이야기나 중요한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세 번째 항목을 듣고는 깜짝 놀래서 접어놓았다. 

중요한 말을 안 하니까 명료하게 말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잰말 놀이를 연습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상대방에게 자기 마음을 꼭 보여 주겠다고 결심하고, 웅얼웅얼대면서도 말하려고 애쓰는 편이 발음에 좋을 겁니다. ...부모님이 뭐든 다 해줘서 정말로 소중한 말을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도 있죠. 그런 사람의 말은 흐물흐물 녹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할 말을 또박또박 하는 것은 퍽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대충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춰서 재잘재잘대기는 쉽지만, 본심을 제대로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본심을 말하기 어려운 까닭은, 본심을 말해 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문학과지성사/2019

 

문지 에크리 시리즈. 친구가 김혜순을 읽자고 했는데 센 것 말고 평온한 말을 보고 싶어서 골랐다. 

그리고 후회했다!

 

후회의 이유-기획의 실패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의 멋진 동어반복을 이기는 글이 몇 개 없다(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책이 2부로 나뉜다. 목차는 그렇지 않지만 크게 그렇다. (내가 나눴다) 1부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다. 3인칭의 그녀는 누가봐도 명백히 저자라서 낯이 간지럽다. 이런 에세이를 김소연이 쓰다니. 2부는 책에 대한 리뷰다.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채우지 못해 리뷰를 가져왔다. 애초에 완성할 수 없었던 책이었다. 기획의 실패로, 제목이 다했다.

 

이쯤에서 설마 표지가 힙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 힙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보르헤스 전집의 귀환을 보는 듯.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

아녜스 푸라리에/마티/2019

 

파리에 가기 전에 두 권의 책을 샀는데 하나는 여행실용서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파리에 대해서 이해하는 부분은 여기 나온 한 줄로 충분했던 것 같다. 운명같다고 생각했지, 아 이렇게 이 책이 나와줬구나. 그러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전쟁 경험과 4년간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는 생각은 전후 파리 지식인과 예술가가 삶의 모든 면에서 느끼던, 자유를 향한 채울 수 없는 갈증을 이해하는 핵심 단서였다. 노동계급 출신이든 부르주아계급 출신이든 다들 자기 계급의 전통, 관례, 예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가족은 폐기해야 할 제도였고, 자녀는 어떻게든 피해야 할 성가신 존재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폐기 처분하기 지극히 어려운 관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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