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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일본어로 다섯 문장 가량을 빠르게 말했다. 느낌상 혼자 왔어요? 어디서 왔나요? 덥죠? 라는 생활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그것만으로 더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리던 노트와 펜을 가지런히 접고, 앉은 자리를 단디 하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올린 후 대답했다. (저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기 전에 그녀는 알았을 테지만. 그녀는 아,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가 어떻게든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는 걸 느꼈다. 그녀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룩이는 대화를 잇는 것을.


그녀는 40대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얼굴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하여간 그녀는 혼자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일본어를 말하지는 못하지만 띄엄띄엄 들을 수는 있었고, 다시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일본어로 물어볼 수는 있었다. 그녀는 일본어와 대만말을 모두 할 수 있었는데, 언어가 하나 더 추가되었지만 조금의 소용도 없었다. 나는 최대한 많은 말을 들어야 거기서 겨우 몇 개를 건질 수 있었다. 그녀가 말을 그만할라치면 눈짓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건넸다. 그렇게 제각기 다른 말로 이야길 주고 받았고, 그것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시간에 비해 나눈 이야기는 아주 보잘 것 없었는데 그게 맞았는지 확신도 할 수가 없다. 이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받아적는 이야기는 지어냈다고 해도 만무하다. 그 몇 개의 단서로 기억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 쓴 것이니까. 안타깝지만 그날의 대화보다 더 나은 이야기는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일본인이다. 대만에서 일을 하고 있고, 대만에서 살고 있다. 친구가 대만에 놀러왔는데 오늘 일정은 그녀만 이곳에 왔고, 이후의 시간에 친구와 만나기로 한 것 같다. -여기까지 이해하는데 거의 이십분을 썼다. 나는 그녀의 일본어가 자연스러워 당연히 일본인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대만이 집이었고, 친구가 놀러왔다는 이야기를 재차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문제도 여러번 물어봤고, 그 친구는 다음 일정에 만나기로 했다고 또 재차 말했다. 그녀는 대만에 살기는 하지만, 여행을 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렇게 오후 시간에 자유럽게 노는 것은 흔치 않았다고. 그녀의 일이 무엇인지도 물어봤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그녀는 형편상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만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지. 그리고 용산사에 혼자 오는 일본인을 찾기 어려웠는데, 내가 그렇게 보여서 반가워서 말을 건넨 것 같았다. 


서로 나눌말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각국의 말이 울리는 절이었다. 마음을 비는 가운데, 그녀도, 나도 아는 말이 들린다고 해서 끼어들어갈 곳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곁을 물어볼 수 있었다. 내가 많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만에서 어떻게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일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좋고 힘든지. 사는 동네는 어디인데, 그 동네의 전경은 어떤지. 나는 그중에 몇 개만 띄엄 띄엄 알아들을 뿐이고 그녀가 사는 일의 좋은 점과 어려운점을 말해도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나는 땀이 묻어나는 볼펜을 이렇게 쥐었다가 저렇게 쥐었다. 앞의 풍경이 자주 바뀌고 있었고, 저쪽에서는 여전히 점을 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녀는 절에서 열리는 법회에 참여하는 신도이기도 해서, 중간 중간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고 앉곤했다. 그때마다 나도 엉겁결에 일어나서 음을 내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노래책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이쯤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두 차례 했을까. 이제 그만 용산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까 들어와서 점을 한 번 본 것 빼고는 줄곧 앉아서 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까 엉망진창으로 나무를 던지고 받은 점괘, 종이가 기억났다. 나는 그것을 주섬주섬 꺼내며, 그녀에게 모여주었다. 그녀에게 내어주며 이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가, 아차 싶었지만, 하여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며 한 번 훑더니 말을 꺼냈다.

 

"...무즈카시 진세..." 귀에 들어온 것은 두 단어였다. 이후로도 그녀는 종이에 써진 글자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뭐라고 이야길 건네 주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종이를 어떻게 받았나. 설명을 다 했으나 그렇게 무용한 설명도 없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내가 알아들었던 두 단어는 '힘들다, 인생'정도 된다. 나는 그게 너나 할 것 없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지, 내 점괘에 대한 그녀의 해석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혹은 '곤란하지, 인생.' 하는 정도의 그녀의 넋두리 같은 거 일수도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왔던걸까. 나갈 때쯤, 이 절이 이렇게 커 보였는데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한 곳에, 내 점을 봐주는 대만에 사는 일본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내게 한 말은, '어려운 인생'이었다. 땀에 솜처럼 무거워져서 나왔다. 입구를 다시 지나니, 여전히 용산사에 왔다고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여전히 두어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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