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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번개 친다, 끊어진 길 보인다
당신에게 곧장 이어진 길은 없다
그것이 하늘의 입장이라는 듯
번개 친다, 길들이 쏟아내는 눈물 보인다
나의 각도와 팔꿈치
당신의 기울기와 무릎
당신과 나의 장례를 생각하는 밤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김선우,『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
어제 당신이 읽어준 시를 잠결에 듣고 오늘 서점에 들러 꽃대 어지러운 시집을 샀어. 이유가 될까. 당신이 천둥 번개를 사랑하는 까닭을.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추는 빛과 소리에도 나는 여전히 서 있어. 이유가 될까. 당신이 천둥 번개를 사랑하는 까닭이. 잠시 후 소리와 빛이 다시 시작되면 내가 있는 곳을 눈 감지 말고 봐주렴. 모래와 모래가 발목을 감싸는 언덕, 한 발 걸으면 발자국만 잡아두는 순한 것들 사이에 있어. 나를 버리지 않아도 남겨주는 착한 것들 위에 서 있어. 당신을 기다려 당신의 무게만큼 더 가라앉아도 좋겠지. 빛과 소리가 다시 시작되면 비가 오는 사막의 밤. 수천미리의 비가 쏟아지려 해. 우리의 발등을 우리의 발등 위에 올려놓고 모래는 우리가 걷는 것을 기다려. 이유가 될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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