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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시와 소설

리쿠의 탄생

_봄밤 2016. 1. 24. 22:56

 

 

 

 

리쿠의 탄생



예컨대 내가 당신을 상희야라고 부를 때, 그리고 상희인 당신이 상희가 되어 하고 대답할 때. 상희라는 이름과 당신인 상희가 동일해 지는 시간은, 타인인 내가 당신을 부를 때뿐이다. 혼자 있는 '우리'들은 스스로 타인이 되어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지 않는다. 더해서 이름은 ''를 주변에 알리는 이미지나 혹은 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름의 주인인 나의 내면에서는 쉽게 생략된다. 모든 이름은 스스로가 아니라 나를 비롯하게 최초의 타자에 의해 지어진다는 점 또한 생각해야겠다. 때문에 책 전면으로 그려진 인물과 인물의 이름에도 이것은 '리쿠'라는 ''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쿠'라고 부르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아이사와 리쿠'를 존재하게 한 아주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리쿠''눈물 흘리는 리쿠'

리쿠의 엄마와 그리고 아빠가 빚는 완벽한 세계에는 불협이 없다. 미소와 사랑, 포옹 같은 것만 있다. 이 속에서 리쿠 또한 완벽하게 이 가정에 어울리는 '리쿠'를 연기한다. 행복해 보여라는 말을 듣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리쿠는 눈물을 자유자재로 흘릴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이 재능은 눈물로 대표되는 '감정'의 통재이며, 리쿠는 눈물 흘리는 리쿠를 통해 다른 자신을 만들었다고 해야겠다. 눈물은 충분한 계산속에 존재한다. 리쿠 자신을 모면하려고 할 때, 인과에 맞게, 순간을 완성하거나 타개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리쿠에게 눈물이 갑자기 차오르는 순간은 없다. 리쿠는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을 알고 있고 그 후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로 


당황하는 것은 절대 ''자신이 아니며, 그 당황은 나를 '리쿠'라고 부르는 이들의 것이 된다. 말하자면, 리쿠는 타인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리쿠'와만 소통한다.

타인과의 소통을 자신과, 연기하는 자신을 통해 이해하는 리쿠의 행동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엄마는 가정에서 '자신'이 아니라 완벽한 엄마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자신'이라고 동일시하며 지낸다. 그녀가 가정에서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애정'인데, 어떤 순간에도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권력의 '아래'에 놓이지 않으려 부단하다. 남편에게 자신을 원할 수 있는 거리를 일부러 유지하는 것. 그것은 그녀가 때마다 가꾸는 식기와 집 인테리어일 수도 있고, 늘 고운 피부일수도 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사랑'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남편 역시 알기 때문에 이 둘에는 어떤 틈이 생긴다.

 

엄마는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남편에게 모두 내주지 않기 때문에 이 관계의 최종에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남편의 애정이나 욕구에서 오는 불만을 상쇄하기 위한 세컨드’. 이것은 남편이 그녀를 절대 버릴 수 없는 윤리로도 작용하며 너그럽게 그녀를 용인하는 범상치 않은 마인드의 소유자로까지 보이는 것. 남편의 세컨드를 인정하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남편의 사회를 지켜주는 엄마는 이 집 먹이사슬의 끝에 있다. 그녀는 언제나 안전하다. 이 완벽은 일방적으로 엄마에 의해 조장된 것으로, 아빠는 용인된 세컨드와 아내 사이의 애정에서 늘 쿨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불안하고 엄마와 아빠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리쿠는 상처받는다. 리쿠가 '여자'아이임을 간과한 엄마의 탓이다. 리쿠는 아빠가 가끔 집에 데려오는 아빠 회사직원과의 관계를 단번에 안다.


그 사실이 가여운 리쿠는 엄마가 원할 법 한 일을 짐작해서 실행한다. 엄마가 말하지 않았지만 원할 어떤 것을 파악함으로써 엄마를 동정하고, 사랑을 얻고 싶지만 리쿠의 짐작은 틀렸다. 그것이 설사 엄마가 원했던 것일지 몰라도 엄마는 절대로 스타일을 구기는 사람이 아니지 않니. 애정을 통재하는 엄마는 자신을 흐트러트리게 보이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엄마는 리쿠의 동정이나 알아챔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쿠가 엄마를 보살펴주려 했던 행동이 엄마에게는 자신을 쉽게 내보였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리쿠를 먼 친척집에 맡기는 조치를 취한다.

 

리쿠를 고모할머니 댁에 보내려고 했던 점은 이를테면 권력 싸움이라고 해야 한다. 엄마는 리쿠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내 스타일을 구기게 했던 너의 어리석은 사랑을 반성하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이를 전부 다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리쿠는 어느 정도 이해한 듯 하다. 그녀는 절대로 엄마가 보고싶다거나, 싫다거나,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는 말은 이쪽에서도 거절이다.

 

리쿠가 가게 될 곳은 '간사이'지방으로 엄마가 한창을 내리깠던 촌스러움, 사투리에 물듬, 스타일 없음 등으로 경멸했던 세계다. 리쿠는 싫지만 싫다고 하지 않는다. 무척 싫지만, 질 수 없는 엄마가 미안해져서 자신을 부르게 되기를, 하는 마음으로 자리한다. 생판 모르는 집에 가서 '절대 적응하지 않겠음'의 날을 세운다.


대가족, 사투리, 시골, 등으로 대표되는 고모 할머니댁은 이야기를 하는 타인이 많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리쿠의 엄마처럼 어떤 한 사람의 뜻대로 모두를 움직일 수 없음을 비춘다. 한 사람의 계산과 통재로 행복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어린 도키짱에서부터 집안의 어른인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개개인은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관심과 말을 나누며 거미줄 같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리쿠라는 애먼 돌이와도 그녀를 안전하게 둘 수 있는 튼튼한 짜임인 것이다. 이 집에는 리쿠네 집에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유머'. 웃음을 시절 없음으로 경멸하는 리쿠의 집안 분위기에 뜻도 없이 날아오는 허접스런 말장난은 리쿠를 언제나 당황시키지만, 그것이 서로의 긴장을 풀며 ''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윤활류였음을 후에 이해하게 된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말할 것도 없이 도키짱이 리쿠를 움직이는 순간이다. 도키짱은 리쿠를 열심히 '누나'라고 부르며 리쿠의 곁을 만든다. 어느새 만들어진 곁으로 리쿠가 세웠던 철벽이 무너지고 그때문에 갑자기 흐르는 리쿠의 눈물로 당황하게 된다. 리쿠는 '눈물을 흘리는 리쿠'를 만날 수 없어서 크게 당황한다.


이쯤으로도 만족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의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으로 깨어나 타인을 만나는 리쿠의 성장담만이 아니라 리쿠 엄마의 상처에도 있다. 리쿠를 간사이 지방에 보낸 사이 엄마는 '키우는 엄마'에서 '일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엄마라는 연기가 여전히 '자신'자체임을 믿는다. 그러나 엄마에게도 자신의 갈증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남겨두었던 단 하나의 구멍이자, 비밀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건강하게 닫는 순간으로 이 어른스러운 만화는 끝을 맺는다. 구멍을 언제까지나 구멍으로 버려둔다면,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가능성으로 평생 자신을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두는 '엄마'인 사람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리쿠의 엄마는 가족과 자신에게도 숨겨왔던 '리쿠의 엄마'가 아니었던 자신의 한 세계를 닫는다. 이후 만나게될 모녀는 좀 다른 사람으로 마주할 것이다. 사춘기 소녀를 그려놓고 그녀를 중심으로 이갸기 되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녀의 엄마가 있다. 성장에는 어른과 아이의 구별이 없어서 이 둘은 이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라는 ''으로 비로소 백지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아아. ''이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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