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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라는 곳. 나라에서도 두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 이제는 노인들뿐이고, 젊은이들은 거의 없어 노인의 부양도 노인이 하는 곳. 서울이나 도쿄처럼 한시도 조용할 일이 없는 도시가 있는가하면 떠나는 사람들로 잠잠히 말을 잃어가는 마을도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을 아주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가만 보고 있으면 이것은 단순히 고조-마을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고조로부터 예견되는 건 '당신에게 잊혀진 어떤 것'이다. 

 

영화는 흑백의 1부와 2부의 컬러으로 구분된다. 1부는 영화를 찍기 위한 스케치 여정을 거의 그대로 담는다. 실제 이 영화 감독의 고민과 작업을 보여준다. 작업차 마을을 살피고, 마을 사람을 만나는 동선이다. 실제 마을 사람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다큐같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야기 좋고 나쁨을 떠나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아무 이야기나 좋으니 들려달라는 감독의 터진 마음을 보라. 영화는 느릿느릿하다. 오래된 마을에 오래산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감독과 미정은 고조에 들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이때의 대화는 2부의 이야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부에서 고조를 소개하는 공무원 유스케는 의외로 뻔하지 않은 곳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는다. 아마 타국의 영화 감독을 만나 더 터놓기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도쿄에서 연기의 꿈을 꾸었지만 재능이 없는 걸 알고 한적한 고조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가하면 마을 소개를 맡아준 겐지 아저씨는 마을의 대홍수를 이야기 하다가, 폐교된 교실 돌면서 근방에서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소개해드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려준다. 첫사랑이 있었다. 젊은 시절 오사카에서 그와 닮은 여자를 만났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마침내는 맞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고조로 돌아온 사연. 폐교된 초등학교엔 겐지 아저씨의 어렸을적 사진이 아직도 걸려있다. 자신의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없는데, 겐지 아저씨는 스스로 그 시간을 그 장소에 봉인해 놓은 것 같다. 


고조는 이런 곳이다. 바깥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더이상 돌아오지 않고, 나갔다가 들어오는 이들은 이곳의 조용함에 자신의 꿈도 묻어놓을 수 있다. 또는 고조와 아무 연관이 없지만 들어와 세간의 도피처로 삼기 넉넉하다. 영화는 시종 고조와 시노하라의 여름을 담는다. 인생의 여름을 다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뜨겁게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따뜻한 눈으로 풍경이 빛난다.

 

혜정과 미정, 배우와 유스케, 겐지와 첫사랑, 오사카와 고조, 그리고 시노하라. 1부에서 단어만으로 단절되었던 이야기는 2부에서 몸집을 갖추고 움직인다. 혜정과 유스케는 여행중에서 만난 로맨스가 이야기의 주. 여행지에서, 언어의 장벽이 있는 이둘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크지 않다. 유스케는 실제로 혜정이 자신의 말을 이해했는지, 알아들었는지를 확인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것이 참 생생하고 아름다워서 눈을 떼지 못한다. 2부는 필연적으로 1부의 이야기에 많이 기댄다. 그래서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2부가 단연 재미있겠지만, 1부에서 별 중요하지 않게 흘러갔던 풍경이나 느낌이 2부에서 빈번하게 차용되기 때문에 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혜정과 유스케는 여행지에서 처음만나 아직 서로를 알 수 없는 가운데, 마음을 눌러 담아 예의있게 행동하면서도 은연중에 서로의 감정을 내내 보여준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었던 혜정은 '지금'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찾고자 고조에 흘러왔다. 유스케는 겐지의 분신 같은 인물. 겐지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영화에서 안타깝게 만난다. 1부에서 나왔던 마을 곳곳을 이들 역시 돌아다니며 역시 조용한 이 마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적어간다. 



그래서 고조는 어떤 곳입니까. 물으면 잠시 망설이다가 역시 감이 특산품입니다. 라는 말로 입을 뗀데도. 혜정과 유스케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겠다. 고조 사람들은 50년대 무지무지했던 홍수를 이야기하거나, 당신과 어머니와 할머니가 태어났던 저 집을 가리키는 것외에 해줄 이야기가 대단하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침에 불공을 드리고 오후에 풀을 좀 베고, 다시 저녁에 불공을 드리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장면'이 될 수 있음을 보여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경중, 재미의 유무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꾸린 삶을 발견하고 대하는 태도라는 걸까. 영화가 1부에서 했던 고민의 결과눈 결국 당신에게 '고조'란 무엇일지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면 다시, 고조는 어떤 곳입니까. 당신에게 잊혀진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고향일 수도, 첫사랑일 수도있다. 한 때의 꿈이거나 한동안 모른 척 하고 싶었던 오늘의 당신일 수도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는 이 모든 걸 다 만날 수 있으니, 이름답다.



 

*혜정과 유스케의 모습이 진짜 사랑같아서 영화라는게 다 슬펐다.

**<비포 선라이즈>시리즈에 비견되는 작품이라며 영화를 홍보하는데 틀렸다. 그 시리즈와 비견할 수 없는 작품이다.

***고조에 가고 싶다. 고조는 나라에서 두 시간 떨어져 있다. 유스케가 당고를 먹고 혜정이 밤하늘의 불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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