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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장갑의 세계

_봄밤 2015. 12. 28. 23:47





장갑을 샀다. 너에게 주려고. 너를 생각하며 장갑을 산 일을 적는다. 네게 장갑을 산 일은 내가 받아보았던 일에서 시작한다. 장갑을 선물 받고 나는 이제 그것을 살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오늘 그 일을 고백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 이런 장갑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물이었다. 저 검은 가죽들은 꼭 맞는 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살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지기도 했으나 거기에 나를 넣을 순 없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냥 '장갑'이라는, 종이에 쓰여질 단어와 하등의 차이가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겨울마다 백화점엔 수많은 가죽장갑이 있었고 가판에도 쌓여 있지만 거기엔 가치를 뽐내는 은은한 광택과 그것을 복제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경계했고 그 길을 상관없이 지나쳐왔다. 의문은 이것이다. 그것을 대체 언제 끼는 것인가. 어떤 시간인가, 어떤 장소에 누구와, 이 장갑을 부속하는 다른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그러니까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장갑을 낄 수 있는 것일까? 내게는 이 장갑을 낄 수 있는 물리적인 손은 있어도 장갑을 낄 '그것'이 없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삶'이 없다고, 진짜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겨울이 와도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장갑을 끼지 않았다.

 

선물받은 장갑은 손바닥은 가죽이고 손등은 모직인데 안쪽에는 털이 있다. 손이 작은 나로서 나에게 이렇게 꼭 맞는 것을 늘려가야한다는 재간이 놀라웠고, 그것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나, 좀더 말해 나의 연식에 놀랐다. (나는 셈할 필요도 없는 내년의 나이를 연거푸 확인하며 믿지 못한다)내게 꼭 어울리고 따뜻한 장갑을 내려다보며 맨 손으로 다니던 잘만 났던 겨울을 안쓰러워했다. 이제껏 이 장갑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어느날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그런 장갑을 처음 끼어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야말로 이 장갑 이전과 이후로 나를 나눌만 한 사건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장갑'이 무엇인지 몰랐을리 없다. 장갑이란, 손의 모양을 본 따되 손가락 들어갈 사이와 손등과 손 바닥 사이를 비워놓는 것이다. 살이 없어 안을 채울 수 있는 것이고 비어있기 때문에 손을 보호한다. 장갑은 보통 재질에 따라 분류한다. 그렇다. 재질은 쓰임이고, 쓰임은 사람도 장갑도 분류한다. 그러므로 나와 상관없는 장갑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간 속해있던 분류와 쓰임과 재질의 일까지 떠올리는 일이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나와 상관없는 장갑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으나, 올해 겨울 그것과 만나게 됨으로써 그동안 내가 장갑으로 포괄하지 않았던 세계랄까, 지평과 조우하게 되었다.

 

세상엔 수많은 장갑이 있지만 내게 무릇 장갑이란 오랫동안 안쪽이 붉고 바깥이 억센 면으로 날 것인 면장갑이었다. 그건 어린시절 아버지의 손보다 더 흔했고 그 못지 않게 어머니가 끼시고 어머니. 허름하게 벗어놓은 오후에는 허기가 맛있어지기 시작하는 점심이 있었다. 자라서는 이십대 아침처럼 끼었던 장갑이었다. 그 장갑이 진짜 멋질때는 빨간 고무가 붙어 있는 생면을 쩍하고 떼어낼 때 팽팽한 긴장감, 거기서 비롯된 오늘의 노동이기도 하지만 오래 쓰면 늘어지면서도 내 손을 알아보는 약속과 성실에 있었다. 자주 끼면 안쪽의 벌건 것이 흐릿해지곤 했는데, 이건 하루나 이틀로 만들어 지는 것 아니고 험하게 다룬다고만 띄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장갑을 끼고 나무에 쇳머리가 올라가는 기구를 흔하게 잡았다. 잘 다듬어진 연장은 아무리 험한 장갑으로 잡아도 아름다운 매무새를 띄었다.


백화점에서 장갑을 사고 내려오는 계단은 지나치게 추웠다. 다시 한 층을 내려가려 할 때 웬 검고 어두운 두 개의 궤짝을 발견했다. 무서워 해야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일었던 것은 ''이었다. 관이 아닌가 싶은 크기와 어두컴컴함은 가까이서 보니 에스컬레이터 교체 시설이었다. 나는 덧널과 회를 부수는 소리가 평온했던 현장, 당신의 머리뼈와 발뼈 사이로 실을 띄웠던 날을 지나갔다. 나는 안쪽이 멋지게 헤지고 바란 면장갑을 끼고 토광묘 안쪽의 오래된 죽음을 받아 적었다. 그때마다 언제나 나의 '낮'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장갑은 그런것이 묻어 있다. 그러니까 장갑은 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맨 손으로 흙을 옮겨야 하는 노동에서 장갑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낀 장갑은 흙이나 그와 연유한 노동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 그 일을 전혀 모르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관절 저것을 언제 끼는 것인가. 의문했던 것은 내가 알던 삶 외에 어떤 생이있는지 알 수 없었던 촌스러움이다. 그것으로 바깥을 보았던 나의 좁은 문, 이제 그 바깥에서 나의 장갑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자주 헤지고 버려졌으나 버림에 의문이 부쳐지지 않던 모습들. 구루마, 삽머리에 표식처럼 쉬던 장갑들...

 

돌아와 장갑을 생각하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며칠 뒤 네가 끼게 될 이 장갑은 이제 네가 아는 어떤 세계가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을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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