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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상한 기후에(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사랑한다. 그중에서 정상적인 루트를 벗어난 사람들이 나온다. 바닷가 근처 여관에서 일하고 또 그곳에서 사는 사람과- 그곳은 곧 잠길 예정이다- 바다와는 별 상관없으나 일과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이들이 그 여관에 간다.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유사한 기후의 장소.

 

주요 인물은 총 4명이다. 둘씩 연인이다. 피아노에서 두 명이 함께 진행하는 곡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사람이 손이 잠깐씩 섞이는 것처럼 이들의 장소와 대사가 간혹 섞인다. 남자 캐릭터에 더 공을 들인 듯 하다.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두 가지에 집중한다.

-말의 내용과,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

-말 함으로서 의미없는 말이 되어버리는 사태

 

물론, 그 밖에 몇 가지를 더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일기를 쓴다기보다 일기를 쓰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좋았다.

또는 일기를 쓴 뒤에 살아간다고 해도 좋았다."

 

 

이것은 완전히 작가 자신의 이야기 아닌가. 능청스러워서 웃겼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기를 '일'이나 '소설'이나 '연애' 등으로 이야기 해 보자.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 몰두하거나 사로잡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이상하다면 왜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다면 왜 그러한가. 

 

 

 

 

 

----여기서부터 인상적인 구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기상 캐스터는 그 순간 자신이 발음하는 문장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등에 땀이 맺혔으나 반복적인 훈련 덕에 표정은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었다. 

 

천은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사로잡혀 있구나. 

 

"당신은 무엇에든 잘 사로잡히는 사람이라서 나와 함께 사는 게 아닐까." 한나가 이렇게 물었을 때 천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글쎄, 그런가."

 

"말 없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안됐지. 하지만 안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안됐다는 것도 의미없는 말이 돼버렸어요."

 

"아라비아에 한 마법사가 살았어요."라고 연이 말했다. 

"아라비아요."라고 모수가 반복했다. 

"아라비아죠. 아라비아의 마법사는 세상의 시간을 조금씩 흔들 수 있는 술을 갖고 있었어요."

"세상의 시간을 흔들다니 그건 뭘까."

 

모수는 연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나 시간은 그렇다 치고 진실이나 마음이 어째서 기체에 가까운가 하고 되묻지는 않았다. 자꾸 캐묻지 않는 것은 모수의 장점이었지만 연은 그게 장점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예상하던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잖아요. 예상을 성실하게 하면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모수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굼벵이 같고 갑각류 같고 보아뱀 같은 자세로 열심히 썼다.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일기를 쓴다기보다 일기를 쓰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좋았다. 또는 일기를 쓴 뒤에 살아간다고 해도 좋았다. 연은 저렇게 몰두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중독된 사람 같잖아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을 만나러 온 거잖아. 그런데 지금 당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른 존재인 것 같아."

천은 별다른 대답 없이 한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나도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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