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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딩의 찐빵집

_봄밤 2017. 8. 2. 16:14

시먼딩의 찐빵집

  


시먼딩은 90년대 초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보행자 거리를 조성하고 주말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활성화 사업을 진행했고, 젊은이들의 거리로 되살아 나게 됩니다. 시먼딩역 출구로 올라오면 세상의 온갖 전광판이 다 나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큰 도로와 인도로 황량합니다. 제가 걸었던 곳은 보행자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차도인양 생각되는 만큼의 인도가 있었습니다. 그 넓게 뻗은 거리를 보며 제 어깨가 다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때는 굉장히 덥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저는 까르푸에 들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대만에 왔다는 표지를 남겨야 했거든요. 3분 차라든가, 무슨 치약이나 방향제, 젤리, 그런 것들을 사러말이죠. 같은 여행을 반복하던 중이었습니다.


넓은 인도는 팔을 양쪽으로 뻗어도 아무도 걸리지 않을 만큼 한산했습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손 끝. 저는 할 일이 없습니다. 내일 출국하는 사람은 이곳에서의 시간을 모두 다 썼습니다. 볼 것을 다 보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겠지요. 아쉬움이야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와, 무엇을 새로 꾸밀만한 여력이 없었을테니까요.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좋지. 라는 생각이었을것 같습니다. 아주 천천히 걷던 중 사람이 몰려 있는 한 가게를 보게 됩니다. 찐빵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빵 사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오평쯤 될까, 작은 가게는 한 명의 주인이 찐빵을 전시한 유리매대 앞에 서 있습니다. 주인의 오른쪽과 왼쪽의 모서리에 큰 냉장고인지 온장고인지가 있고요. 그리고 주인이 서 있는 곳 뒤편의 벽에는 빼곡히 적힌 메뉴판이 있었습니다. 꽃빵을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런 빵이 한 줄에 댓개씩, 두줄로 세트로 있었습니다. 주문수량에 따라 덜기도 하고 더하기도 했습니다. 찐빵 주인은 어떤 아주머니였는데 능숙하게 냉장(온)고를 열고 비닐팩을 슥슥 뽑아서 재빨리 포장해 주었습니다. 이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것은 주문하는 이의 손길이었습니다. 이빵, 저빵, 그리고 이빵, 하는 모양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수의 찐빵을 사가면서 종류를 달리하는 것은 아마 그 집의 식생활을 들여다 보게 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틀 치인지, 사흘 치인지, 아니면 일주일의 양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문이 찰떡같은 호흡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기엔 번잡한 설명도, 포장을 못미더워하는 눈길도 조금도 없었지요. 소포장된 찐빵과 그걸 두 개씩, 세 개씩 포장한 큰 포장을 깡똥하게 채려 갔습니다. 


이 가게에는 이렇게 대량으로 주문을 하며 가정의 식단을 계획적으로 짜 두고 있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젊은 여성들이 들려서 두 어개 간식으로 사가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삐걱삐걱 자전거를 타고온 남자 아이도 두 개를 사갔습니다. 한 쪽 핸들에 봉지를 쥐고 덜렁덜렁 자전거는 왔던 길로 천천히 굴러갔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대만에 오기전에 저는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대만의 간식으로 찐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이 이름도 읽을 수 없는 가게는 미어터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문을 살피는 사이 저는 어느덧 이 가게에서 뭘 사겠다는 사람들처럼 들어와 있습니다. 구경꾼의 자리에서는 이제 이 가게를 들리는 일원으로서 서 있게 된 것이죠. 이제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저를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부터 서 있었지만 주문은 하지 않고 빵 담아주는 것만을 지켜보는 사람에게요. 하지만 이제는 빵을 살 것처럼도 보입니다.


대만말을 읽을 수 없는 저는 그게 만두나 찐빵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리고 이미 찐빵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종류가 굉장히 많았는데 이들 중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주문이 많을 때마다 열리는 게 냉장고인지 냉온고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날씨에 실은 둘 다 어울렸거든요. 조금 더 있자 이제 바로 먹을 수 있는 찐빵을 알아채게 됩니다. 아니, 대부분은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싶더군요. 이제는 인기가 많은 걸로 사고 싶었지요. 그것을 혼자서 배우느라고 제 뒤에 온 사람들을 하나 둘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유유히 빵을 사서 지나가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더 미룰 수도 없이,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양보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근처 빌딩에서 일을 하다가 나온 모양이었습니다. 회사 카드를 목에 건 풍채가 좋은 남자. 삼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더군요. 스트라이프 셔츠. 안타깝게도 얼굴은 생각이 잘 안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빵을 날렵하게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어요. 


-빵을 사주고 싶습니다(영어)


그곳에는 그 남자와 저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주변이 된 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저는 활짝 웃으면서 손바닥을 보여줬습니다.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손바닥에는 몇 개의 동전이 있었지요. 


몇 개였지만 저 찐방을 서너개 사고도 남을 돈이였습니다. 저는 원피스에 어울리지 않는 배낭, 목에 건 카메라. 누가봐도 어떤 나라에서 여행 온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찐빵가게에서 삼십 분째 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알아요. 그치만 빵을 사주고 싶습니다(영어) 역시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손바닥에도 몇 개의 동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찐빵을 고르게 됩니다. 남자는 무엇을 고르겠냐고 물었고, 저는 주문을 하면서 저는 이것 저것을 물었습니다.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닭고기인지를. 여기에서 우리의 대화는 더 가지 못했습니다. 난감해 하는 사이 영어를 하는 젊은 여자들이 묻습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아닌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기 시작합니다. 자신들도 의아한 부분에서는 주인에게 더러 묻더군요. 그리고는 긴 손가락으로 제 얼굴과 제 뒤에 서 있는 아저씨를 번갈아 보면서 말합니다. 이 줄 메뉴도 아니고요, 저 줄 세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도 아니고요, 아, 새우는 괜찮아요? 여기 메뉴들은 고기가 없습니다. 그 작은 가게에서 혼자 대만사람이 아닌 저는 서너명의 도움을 받아 찐빵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대단했습니다. 갈색의 빵이었는데요. 여러 명이 함께 고른 그 빵은 앙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했지요. 


남자는 계산을 하며 좀 의아해 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게 많은데 하는 표정이었죠. 그리고 제가 하나 밖에 고르지 않았거든요. 생각해 보면 그는 주문을 대신 해주기 위해 사 준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 주문도 몇 사람의 힘이 더해져야 가능했습니다. 빵을 들어보이며 고맙다고 말하는데, 웃었던 것도 같은데, 그는 빌딩 숲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주 빨리요. 아마 일하는 중에 간식을 사러 나왔다가 빨리 들어가야 했던 거겠지요. 몇 걸음은 뒷걸음치면서, 멀어졌습니다. 그 가는 길을 보니 사실은 저도 같은 방향으로 까르푸를 향해 가야하는데,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찐방 가게 주인에게 눈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찐빵 하나를 샀다고 하기에 저는 이 가게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네가 빵 담아 주는 것을 너무 오래 지켜보았고,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주인과 말 하나 하지 않았지만 어떤 우애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까부터 서 있더니 결국 우리집 찐빵을 먹게 되었군요. 그렇죠. 대만의 맛을 하나 더 얻기까지 저는 약 스무명의 사람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가 뛰어간 거리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갈색 빵을 쥐고서요. 저는 그 빵을 먹으며 걸었습니다. 조금 심심하지만 맛있는 빵이로군. 그리고 까르푸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대만의 이것저것 사고, 돌아오는 길에 그 가게에 들립니다. 이제는 능숙하게 주문을 했습니다. 고기가 없는 찐빵을 알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그 빵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


대만의 시먼딩은 어쩐지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어째서 신촌인가 한다면 저는 홍대까지 들어서 거리의 번잡함, 불빛의 휘황함, 약간의 비애등을 들어 그 비교를 잘 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몇 줄을 쓰다가 지웠습니다. 신촌이니, 홍대니 안다고 할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셋 다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솔직하게 풀기로 합니다. 


신촌에 빗댄 것은 젊고, 쓸쓸한 정서 때문이었습니다. 신촌에는 가끔, 그러니까 한 낮에서 약간 기울거나 잠시 있었는데 어느덧 밤인 적 갔었습니다. 생활이 신촌인 적이 없었으니 주변의 시간에 머물렀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녁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그래서 그곳을 벗어날 때쯤은 우뚝한 현대백화점을 등뒤로 걷지 않았겠어요. 역 주위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키 낮은 건물들, 서로 점멸하기를 기다리는 듯한 불빛들, 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젊은 사람 피곤한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광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홍대에는 약간 미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홍대 역사 안에서도 계속 됩니다) 그게 신촌과 홍대의 다른점이고, 홍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쓸쓸함의 정서가 신촌에는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건 아마도 근처에 마루를 닮은 장판에 머리를 좀 눕히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잘 들켰던 곳은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신촌에는 대학의 저편에 좁고 가지가 많은 거리의 모텔들도 있습니다만, 그 모텔의 일일까지도 이 쓸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를 위한 장소라고 합시다. 최대한 서로로 있고 싶은 창이 수 만개인데, 그러기에는 그곳의 모텔들의 입구는 너무 가깝지 않던가요. 그들과 이들, 저곳와 이곳을 피해 있기에는 조금 서글픈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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