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의 가능성 -『네모』, 이준규


허무맹랑하게도

네모는 시의 모습이다. 시는 오랫동안 네모였으나 아무도 네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시집은 네모나고, 그 안에 사는 시도 네모를 갖춘다. 시는 둥글게 모일 수도 있었으나, 차분한 각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시는 엄밀히 말하자면 네모는 아니다. 꼭 한 칸을 들여쓰기 때문에 큰 네모에, 작은 네모가 빠져 있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뤄져 있다는 세계를 살지만 그곳에는 꼭 나 하나 만큼의 허전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어떤 우주에서도 찾아 가득해 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시인은 늘 한 칸을 띄우고 이야기를 시작한다그래서 만들어 진 시는 큰 네모와, 그것을 이루기도 전에 사라진 작은 네모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네모를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  ]의 가능성은, 우리가 읽을 시 밖의 형상 '네모'. 들여 쓴 '한 칸'의 세계를 가늠해 보는 일이다.

 


 


그때 비가 쏟아졌다.

거리'무방비'라는 단어의 뜻을 알려준다. '서러움에 어떤 거리가 생겼다. 모든 사물은 어떤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비가 쏟아졌다.',거리부분. 이곳까지 읽었을 때 나는 불현듯 비를 맞는다. '그때' 는 분명히 '비가 쏟아졌다'보다 먼저 오지만'그때'를 생각하느라 비를 먼저 맞는다. 비를 맞으며 그 전까지 몰랐던 '그때'를 기억해 낸다. '그때'는 시인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장소다. 그러나 서러움과 모든 사물이 '어떤 거리'를 환기하는 동안 비가 내리고비가 내리는 동안 '그때' 온다. 연결되는 다음 구절은 '어디였을까'이다. 아직 지칭되지 않은 말들은 '내가 자세히 그리워하지 않았던 곳'이라는 뒤에 오는 구절로 의미를 찾는다. 무의식은 화자를 알지만, 화자는 무의식을 모른다. 단어를 내고 그 다음에 왜 그 단어를 냈는지 살핀다. 이것이 네모의 양식이다. 시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말과 알 수 있는 말을 번갈아 가며 썼다.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카시아 잎 뿐이다. 좋아한다, 안한다, 이곳에서 독자는 무력하다. '그때'보다 늦게 오는 비를 이미 맞고, '어디선가'를 떠올리기 전에 풍겨오는 들깨 향을 맡는다. '미지정'된 곳과 시간 덕분에 얼마든지 당겨 오는 서술의 풍경. 당신에게는 어떤 비가 내릴까.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다시 '그때'를 기다린다.

 

네모라는

이곳의 고개는 이렇게 온다. '여름비가 내린다. 여름에는 우체통에 책이 꽂히기도 하고 여름비가 내려 바지가 젖기도 한다. 젖은 바지가 더 젖기도 한다. 한 줄 읽고 있어도 내리고 두 줄 읽고 있어도 내린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고개부분. 빈약하게 이어지는 풍경, 뚝뚝 끊긴 앞뒤에는 무한한 풍경이 들어간다. 몇 년이 흐르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단서가 없는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우체통에 책이 꽂힌 것은 내가 꽂아놓은 것인지 누군가 꽂아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두의 가능성. 바지가 젖는 것이 우체통의 책과 관계한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비와 우체통과 책은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젖은 바지가 더 젖는 것은 비가 많이 와서 그런 것인지, 밖에 오래 서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시인은 좀처럼 책을 읽지 못한다. 한 줄을 읽고 비가 오는 것을 알고 두 줄을 읽고도 비가 온다는 것을 안다. 젖은 바지가 또 젖는 풍경 속에 내가 서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바지가 젖고 또 젖었나. 역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모습이지만, 이내 젖은 이유를 알게 된다. 시는 읽는 이의 경험 속에 들어가 있다. 시인은 부지런히 '네모'를 마련한다. 네모라는 문인지, 천장인지 이불인지 모르는 곳을 만들어 비가 내린다. 가만히, 오래 전에 내렸던 비를 이곳에서 다시 맞는다.


독자는 읽을 수록 이해할 수 없는 시어의 '사이'에 안기게 된다. 가령 ‘나는 마루를 서성거렸다. 나는 울지 않으며 밥을 먹었다. 다 부질 없었고 다 거짓말이었다. 책상 앞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얼굴, 부분. 이곳에서는 울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무엇이 거짓말이었는지 들을 수 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알 수있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말한다' 시는 나의 무엇도 건드리지 않고 안아준다. 시와 나 사이에는 터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을 때, 손에 닿는 것은 얼굴만은 아니었을 것을 알 수 있다. 끝에 다다를수록 시의 마음은 더 분명해 지는것 같은데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당신은 참 좋다고 했다. 당신은 미안하다고 했다. 가도 가도 눈이었다. 가도 가도 눈이었다.’ 부분. ‘당신은 참 좋다고 했다당신은 미안하다고 했다의 사이에 갇혀서 생각한다. '좋다고 했다'와 '미안하다고 했다'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말들을 건너 올때 연해지는 뒷모습 같은 것을 떠올린다. 아무말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은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큰 네모와 작은 네모의 귀퉁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투리가 있다. '시'로 완성된 『네모』는 처음의 한 칸을 비우고 만들어진 '작은 네모'를 구체화 하기 위한 말들이다. 시는 무엇도, 왜도, 기억도, 시간도 장소도 없는 곳을 만들고 눈과 비를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무작정 맞으면서, 나의 무엇과 왜와 기억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커다란 세상은 부족함이 없는데 나는 헤아릴 수 없는 허전함을 느낀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곳은 때론 세계의 전부를 합쳐도 모자랄 만큼 커진다. 그래서 보이는 세계 '네모'외에도, 미지의 그곳을 위한 '네모'의 형식이 필요해 진다.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 잡은 손을 놓치고 부유한다. 내가 나의 무엇과 왜와 기억을 분별하게 될 때쯤 엄청나게 커졌던 빈 곳은 한 아름으로 안을 수 있을 만큼 줄어드는데 그곳은 결코 내 품으로 안을 수 있는 크기가 되지는 않는다. 그때,『네모』는 허공을 메꾸는 대신 다른 손을 기다리기로 한다. 허공을 안을 수 없다는 먹먹함을 위로하지 않는다. 나만 알고 있던 허공에 '무심코' 걸어오는 다른 손이 있다고 믿는다. 『네모』는 천천히 '그 손'을 기다려왔던, 당신의 표정이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