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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노섭/오숙은/열린책들


우리는 감지 할 수 없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비근하게 숨을 쉬는 일에 온 힘 들이지 않는 것이 그렇고, 신용카드 정보 누출 같은 일에 화를 오래 내지 않은 것이 그렇다.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대상에게 감정을 오래 투사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감각해지는 것은 벌어진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상관 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에게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어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신용카드 3사로부터 -모든 개인정보가 털린- '막대한 침해'를 겪었음에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노예 플랫은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의 횟수를 다 기억할 수 없다.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으로 '주인'의 본성을 표현할 수도 없다. 자유인으로 인정 받은 후, 더 지독해졌을 엡스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랫은 노예로 지내는 12년 동안 놀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인간'이 벌이는 잔인함에 무감각해지지 않은 것이다. 플랫은 시시로 놀란다. 채찍질이 벌어지는 광경과 매질의 깊이가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어제 보았던 일이 오늘 벌어지는 것에 '또' 놀란다. 잔인함의 감지할 수 없는 크기, 그 겁없음에 말이다. 그래서 <노예 12년>은, 노예로 지냈던 날들의 참상을 고발이 아니라, '주인'의 잔인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자신과 싸웠던 날들의 기록이다. 플랫이 육신의 비참함에 가려 놀라기를 그만 둬 버렸다면, 플랫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이 책 역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예 '12년'은 한 권의 책이고, 그것은 한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12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시간이지만, 플랫이 겪었던 12년을 보편적인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다. 어떤 숫자를 이어 붙여도 그가 겪은 낮밤을 합당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플랫이 이름을 찾던 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기쁨은 어디에 자리 잡아야 좋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패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부 짖는 소리가 들린다

플랫 덕에 수많은 채찍질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자유인이 된다니 기뻐요 - 하지만 , 오! 주여, 주여! 전 어떻게 될까요? 295

패치에게 위로를, 플랫이 자유인이 되고나서도 매질을 견디고 마침내 죽었을 무수한 패치들에게 배스의 말을 전한다. 이 한권에 패치와 배스의 말이 모두 들어 있으나 끝내 서로 만날 수 없던 목소리다. 이렇게라도 잇는다면 들릴까.

무시무시한 죄악이 이 나라를 짓누르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겁니다. 그걸 심판할 날이 올겁니다.-그래요, 엡스. 화덕에서처럼 활활 타오르는 날이 올 거예요. 어쩌면 조만간, 아니면 나중에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신은 공정하시니 틀림없이 그날이 옵니다. 256

그러나 그날은 언제 도착하는 것이며, 노예는 과연 '노예제 폐지'와 함께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는 대답은 언제 누가 할 수 있을까. 이름 모르는 섬에서 '노예'로 감금되었다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바로 귓전에 있고, 형제복지원이 간판만 바뀌고 그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어제에 있었는데.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자유를 다 확인하고 나서야 다른이의 자유를 둘러볼 수 있고,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늘 다른 이를 침해해야 만족하는 자유 같아서 나는 책을 읽는 오늘의 자유를 '불편'하다고 느낀다. 혹시 자유는, 자유를 '문득'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자유'라는 이름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나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아주 공평히 말해서, 내 자유에 대한 권리는 도로 정비라는 이름으로 뿌리째 뽑히는 플라너스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말 한마디 한 적 없는 자연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고, '고맙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또한 나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기업에게 분노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어떤이에게는 내 자유가 나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고, 어떤 이에게서 내 자유는 한없이 쪼그라 들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자유, 역시 그렇지 않나. <노예 12년>은 내가 가진 자유 이상의 가치, 모두의 자유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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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기 재산을 잃는 건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댁의 자유를 잃는 것과 비교하면 별로 힘드지 않을 겁니다. 
아주 공평히 말해서, 댁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저기 엉클 에이브럼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아요. 257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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