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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김혜진, 한겨레출판, 2019

 

그녀와 나는 일로 마주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한 눈에 나는 그녀가 좋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책으로 먼저 말을 걸곤했다. 유년을 지방에서 보냈고, 장녀라는 몇 가지 단서 만으로도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한다. 반에서 어떤 그룹과 어울렸으며, 누구와 친했고 어떤 과목을 좋아했으며 좋아하는 선생님은, 급식실에 어떤 식으로 뛰어갔을까 하는 것등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종내는 거기서 나를 만났을까. 를 떠올려 우리가 친구가 될 가능성을 대충 점쳐 보는 것이다. 그녀와 내가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더라면 분명히 같이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깔깔거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책을 모르는 경우가 없었고, 안 읽은 경우는 있어도 그 책을 소장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 정도로 책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가 정말 즐거웠다. 내가 좋다고 한 책은 다음날 당장 사서 자신의 소감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빌려주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나 또한 이틀인가 삼일만에 읽고 당장에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빌려준 책을 사서 나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추천했던 작가는 정세랑과 박상영이었다. 박상영의 유머에 엄청 웃었다고 했다. 그게 혹시 안 웃길까봐 아직 읽지 못했다. 

 

<9번의 일>은 그녀가 회사를 떠나며 내게 준 책이다. 정년을 10년 남기고, 일에 평생을 실은 남자가 회사 바깥으로 밀려난다. 회사는 그를 더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근거와 절차를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비틀어지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걸 낑낑거리며 통과할 쯤에는 자신이 누구인가, 왜 이러고 있나의 질문은 떠오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 구간을 통과하며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이는 회사를 떠나며, 남아 있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를 매우 미워하게 된다. 주말을 지나고 그녀를 회사에서 볼 수 없었다. 그건 이 회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일과 같았다. 

 

 

처음 읽는 영미 현대 철학

철학아카데미, 동녘, 2014

 

화이트헤드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물론 그때 배운 것은 다 잊어버렸고 교실의 밝기와 분위기만 기억한다.  

 

<처음 읽는~>시리즈는 각 나라별 철학 계보를 훑기에 좋다. 우리나라 교수, 전공자들이 자신이 공부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시대배경, 그리고 그가 어떤 공부를 했고 철학을 했는지 비교적 쉽게 이야기 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비트켄슈타인이지만,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마이클 왈쩌, 힐러리 퍼트남의 이야기도 남는다.  

 

"매킨타이어가 볼 때, 그리고 왈쩌가 볼 때, 롤스의 정치철학이 불만스러운 것은 롤스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자유를 사회적 맥락과 완전히 단절하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을 나타냈어요.

 

그런데 왈쩌는 내가 선택하진 않았지만 나의 삶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을유문화사, 2016

 

독서모임에서 친구가 추천한 책.

나와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책에서 위로를 받고 나를 이해할 가능성을 찾았던 문장들.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기능하도록 구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조차 집단의 한 부분이 된다. 음악을 듣거나(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 텔레비전으로 농구 경기를 시청하거나(선수가 달려가고 점프하면 우리의 근육도 긴장한다), 회의를 앞두고 엑셀로 자료를 정리하는 경우(상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추측한다)에도 마찬가지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 쏟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면 자신의 '몸속'에 존재해야 한다. 깊이 숨 쉬고, 내적 감각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몸과 분리되어'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게 만드는 해리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텔레비전이든 컴퓨터 모니터든 각종 화면 앞에 드러누워 수동적으로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우울한 상태와도 상반되는 개념이다. 연기는 몸이 인생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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