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다음 생에 할 일들-안주철
_봄밤
2015. 10. 19. 23:23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안주철, 『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 2015. 9
좋아할 수밖에. 마지막 줄을 제외하고 문장마다 모두 마침표를 눌렀다. 다음 문장으로 도망가지 않고 그냥 거기서 자신을 책임지고 있다.
그게 하나도 안 멋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대로 따라 치는데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저렇게 생겨먹은 온점을 좋아한다.
심지어 배고파. 하는곳에도 온점을 찍어놨네. 망할.
정말 촌스러운 시집이다. 유머도 없고 기교도 없고 아프리카 흙 어쩌고 할때는 주책없이 따라 웃었지만 그걸 숨기지는 않겠다.
전반적으로 승질을 돋군다.
그래도 좋은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