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비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종아리에 체인이 자주 채였다. 생채기가 났다는 느낌이 며칠, 지나고 나면 아물었을거라는 무관심으로 날들을 지났다. 어제는 모처럼 쉬는 날이 길어 맨다리를 볼 여유가 있었다. 오래된 멍과 이제 막 든 멍이 겹으로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아픔으로 있는 자국이었으나 눈으로 확인하자 구체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란 눈으로도 앓는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는 그 풍경의 손짓을 사랑한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건 간에. 172p
고향에 다녀왔고 그 길을 수년 만에 걸었다. 중학교 근처는 더 없는 '밤'을 보여주었다. 사위가 어두워 그 속에 오래 있어도 사방이 익숙해 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십 수년 전 다녔던 독서실을 물어보았다. 가건물에 책상을 놓아둔 황급히 꾸려낸 그것은 운영을 그만둔 것은 아주 오래 전이라고 했다. 철제 계단이 시간을 견디며 라면을 먹고 잠을 자주 자던 추억의 입구로 안내하고 있었다.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무엇으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도서관이 황급히 떠올랐다. 꽤 탄탄한 건물이었다. 고향에서 보기 어려운 구조였고, 모든 것에서 새 냄새가 났었다. 그는 여기서부터 저쪽까지 손으로 둘레를 치고 아파트가 들어올 거라고 했다. 그곳에 도서관이 있던 자리도 있었다.도서관이 있는 큰 길은 내가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배웠던 장소였다. 좁은 샛길을 따라가면 초등학교가 나왔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평지였다. 도서관이 사라지고, 오토바이를 배우던 길도 사라지면 그때 시간은 이제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묻지는 않았다.
차로 몇 십 분을 달리면 바다가 있는 동네였다. 저기는 왜 이렇게 불이 많지, 물으면 저쪽은 항만이라는 이야기, ㅁㅁ항이라고 설명이 돌아왔다. 곳곳에 공장이 많았다. 여긴 시멘트 공장, 저기는 발전소, 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오래되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저들보다 이곳에 있던지 오래되었다는 걸 그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불 빛이 줄어들지 않는 밤 속에 찌가 작은 불빛으로 함께 출렁였다. 화살처럼 쏘는 낚시대를 보았다. 휙휙 하는 소리에 밤은 줄어드는 맥주 속에 동동 떠있었다. 우리가 이 나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아니,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되지 못 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물 수제비는 기울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팔아야 할 추억도 이제 끝이다. 새로 올라올 아파트 건너편으로 십 수년 후면 이곳을 지키는 주민의 태반이 사라지지 않겠느냐, 라는 말을 그는 이었다. 모르지 않았다. 슬픔은 눈으로 몰려 오는 거라는 생각이 마저 떠올랐다. 종아리가 시큰시큰했고,
내일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초가 많아서 좀 줄여서 축하했다. 더위에 케익이 녹아서 초를 뽑을 때마다 뭉근하게 생크림이 묻어 올라왔다. 그것은 구멍이었고, 깜깜했다. 그날 밤에는 별이 몇 개나 보이나 보려고 나갔는데, 기껏해야 십 분이 안되었을 빈자리, 아버지는 주무시다 일어나서 술렁이셨다고 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 왜인지 울고 왔냐, 고 하셨다. 왜 그렇게 물으시는 거지? 맨 얼굴로 머쓱하게 그냥 하늘 좀 보다 왔다고 했다. 그러냐, 하며 뒤를 돌아 주무시는 잠. 덮어드릴까 하다가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161p
<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비밀에 대해서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한다. 시처럼 이어지는 버거의 문장이 어지러울 때도 있다. 어지러우면 어지러운 대로 좀 있다 오면 된다.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는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정리해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건 내가 말을 주저하거나 말하지 않기를 주저했던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기 어려운 것과 결을 함께 한다. 삶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어떤 장부터 읽어야 할까. 난감한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생의 수를 겹겹 펼쳐 놓았고, 그 장면이 나와 만나는 이야기는 기억마다 다르다.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쓰지만 궁금증을 불러오기 쉽지 않다. 그대로 비밀이 되어 묻히는 것이 태반의 생. 안타까운 것이다. 내게 물어봐 준다면, 셜록보다 날렵하고 긴박하게, 놀랍도록 많은 이야기를 밤새도록 이야기해 줄텐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라는 비밀을, 당신이 물어봐 준다면 끝없이 이야기 할 수 있을텐데. 밤이 기울기 시작한 여름을 안타까워하며 어둠이 길어지는 겨울녘을 벌써 기다릴 수 있도록. 여기 나라는 이야기를 한 가지 쓰고 한 밤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