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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해서

_봄밤 2015. 5. 10. 21:23



붉다고도 할 수 없는 자주색의 벽돌이라. 지어진지 삼십년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건물의 1층에는 미용실이 있어 계단을 올라가면 파마약 냄새가 잘 들어왔다. 예전의 냄새였다. 흡사 읍내의 미용실 냄새다. 높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나방 같은 무늬의 커튼이 있던 곳. 나는 눈을 감고 잘리는 머리와 함께 조용히 있었다. 뒤에는 엄마가 계셨다. 그때 계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커튼 색으로 보자면 가을도 늦은 가을일텐데 의외로 바깥은 여름일 수도 있었다. 말이 없는 모습이 어울렸던 엄마. 이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유년에 맡았던 냄새를 이렇게 커져서 맡게 되었다. 벽돌은 붉다기 보다 자주색이었고, 그게 십년의 연륜을 더 있어보이게 했다. 그런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피곤한 얼굴과 단정하게 묶은 머리. 


그런 회사에서 그는 하루의 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일이 있으면 남는다. 남는 날이 자주 되었다. 그는 가족이 없었으므로 어떤 행사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명절이나 연말, 연초 아무 상관 없는 듯했다. 오월도 그랬다. 어린이날에서 어버이날로 이어지는 날들은 모처럼의 휴가일 따름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가면 가족이 있겠군요' 가족이지요. 가족이다. 거실 문을 열면 동생이 있고 작은 방 문을 열어도 동생이 있다. 나는 나보다 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가족이요' '가족이지요' 웃긴 얘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이야기에 웃다니. 나는 그런 이야기에 웃었다. 


그날은 배가 무척 고팠고, 어느덧 일곱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므로 이것만 저장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키가 큰 그는 들어와 '저녁'이라고 하는 말부터 웃었다. '저녁'을 이야기 하는게 웃긴가. 오늘 또 야근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른 집에 갈겁니다. 라는 말이 눈속에 있었다. 저녁 메뉴는 중국집이라고 했고 나는 큰 대접에 담기는 면도 기름이 둘러진 밥을 다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들어온 이, 밤씨 피자 어때요? 라고 했고, 나는 피자의 조각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한 그릇이 아니라 한 조각만 먹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