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의 노래

_봄밤 2014. 12. 25. 20:26




그는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임플란트를 했다. 올해도 할 예정이다. 이는 흔들리며 잇몸은 붓길 잘했다. 그는 머리칼이 거친 회색이다. 염색을 하지 않는 것은 별 다른 설명없이 염색은 그냥 싫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는 대체로 술을 못하지만 자리에서 빠지거나 술을 거절해 본 적은 없었다. 그의 얼굴은 대춧빛이다. 햇볕과 천둥을 간직한 쌩쌩한 대추가 아니라 그늘의 설움이 합쳐진 검붉은 색이었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 성악을 하라는 학교 선생의 권유를 받은적이 있다. 그는 여덟째였다. 그의 형제 중 대학에 간 이는 막내 아홉째 밖에 없다. 그는 고등학교를 다른 도시에서 다녔는데, 졸업 후 고향에 돌아왔다. 형이 하는 농사를 도왔다. 종종 저수지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했다. 그때가 20대 중반이었다. 그는 중학생일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렇게만 '짧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는 수년 전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요청이었다. 그녀는 성당에 함께 나가는 형님내외가 부러웠다. 그렇게 하기를 몇년, 마침내 성당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성당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을 가져보자는 의미 아래 노래를 다시 해보자라는 뜻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종교란 믿음을 크게 우선하지 않아도 삶을 공고히 보이도록 한다. 진정으로 믿음이 있다면 어떤 건물로 굳이 나가서 나의 굳셈을 너의 열정, 우리의 화합을 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곳에 모이도록 하는 것은 생활에 종교를 넣음으로써 나의 생활에 종교가 보이는 어떤 반석, 종교가 보여주는 어떤 청정함, 종교가 보여주는 경건함을 일상에도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성당에서 차츰 노래와 생활을 이루기 시작했다.  


연습은 쉽지 않았다. 십수년 간 쉰 성대는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았다. 목소리는 좋았으나 박자를 잘 못맞추었기 때문에 함께 부른다는 '성가대'의 의미를 잊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년. 그는 올 성탄절 미사에서 특송을 하게 되었다. 경사롭다 110장. 호흡이 느리고 느린 파도처럼 선을 그리는 위엄있는 노래였다. 그녀는 녹음한 것을 들려주었다. 연습했던 것만큼 부르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말했다. 중후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귀와 마음을 울렸다. 그러나 호흡이 짧아서 파도는 부드려운 면을 세우기 전에 고꾸라졌다. 선이 이그러지는 노래, 귓속에서 넘어지는 음들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경사롭다 고요한 오늘 밤에 아기 예수 탄생 하시도다'로 시작하는 노래에서 벌써 예수의 수난을 예감케 했으니. 수 번을 돌려 들었고 천진한 칭찬을 말했을 때, 그는 짧게 대답했다. 딸, 즐거운 성탄! 


수년 전 같이 일하던 어떤 선배는 나를 뽐(그는 봄을 꼭 뽐이라고 불렀다)노래 해야하는데.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선배는 박완규 노래를 특히 잘 불렀는데, 그럴때면 부끄러움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난데없이 건네는 거였다. 성악하라는 이야길 들으신 적이 있대요. 그게 어떤 유명한 성악가로부터 들었는지 고등학교 음악선생이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역시, 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의 너스레는 늘 같은 레파토리를 부르면서도 우리가 노래방 가기를 그만하지 않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시멘트를 개는 삽과 잘 빠지는 논과 다시 찜질방, 벽돌과 함석. 그리고 어느 지방에서든 일했던 건물을 알아보는 눈, 회색의 머리칼의 그에겐 수십년 전 노래를 알아준 이가 있었고 그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오늘 고향의 어떤 성당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의자와 바닥, 그리고 유리창과 천장을 울렸는데. 그러기 위해 그는 농사를 짓는 틈틈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지난한 일년의 일과가 쉬는 겨울이왔고 그의 연습은 마침내 무대를 올렸다.


나는 즐겁다는 뜻을 다시 생각한다. 경사롭다 110장, 특송은 혼자 부르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