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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그림자들 사이에 그림자로 남겨두면 안 될까?

_봄밤 2014. 11. 25. 00:14





시간은 우리가 되고자 애쓰는 인간을 저버리며, 죽음은 우리가 믿었던 것과는 다른 인간을 드러내 보인다. p. 193 

미셸 슈나이더<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재산을 배분하며 재산으로 사랑까지 측정하려 하는 리어 왕은 자본주의를 체현한 인물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리어 왕이 자신의 가족을 재앙으로 이끄는 동안 우리는 "어리고 정직한" 착한 코델리아를 잃을 것을 통탄한다. 사랑을 위해 돈과 권력을 부정한 죄로 아버지에게 절연당한 코델리아는 쫓겨나는 와중에도 예의 그 강직함으로 언니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시간은 숨어 있는 흉계를 드러내고 감춰진 잘못을 창피 주며 비웃을 테지요. 부디 잘 지내시길." 코델리아는 인내의 시간, 사랑, 진실을 상징하며 리어 왕은 성급함의 시간, 분노, 폭력을 대변한다. 우리는 그녀를 두 번 다시 잃으면 안 된다. p. 126 

김성환<말 아님 노래>





제목. 


"굴드를 그림자들 사이에 그림자로 남겨두면 안 될까?" p.183. 에서 가져왔다.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동문선.


사랑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문장이다. 문장이 자신 스스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고 그리는 대상, 굴드를 보호하기 위해 넓게 옷가지를 펼쳤다. 이 풍경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처참하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이 외투를 더이상 펼칠 수 없을 때까지 팽팽하게 잡고 있다. 그곳은 겨울이고, 살얼음이 군데군데 낀 평원이고, 별이 잘 보이는 하늘인데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이렇게 지키고 서 있는 문장이라니. 저 마음이 어떤 마음이기에, 두 번이나 더 읽어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굴드를 그림자들 사이에 그림자로 남겨두면 안 될까? 밑으로 몇 줄 내려오면 저자는 굴드의 전기가 꼭 쓰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길고 지루한 그의 전기가 완성된 후였다.



리어 왕은 어릴 때 읽은 적이 있다. 어렸지만 동생인 적은 없었으므로 자연히 동화나 이야기, 드라마에서 나오는 첫째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게 되었다. 그네들은 나빴고, 미움을 받으며, 목소리가 컸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욕심이 많았고 지탄을 받았으며 행복하지도 않았다. 나는 동화나 이야기, 드라마를 이해하기 전에 첫째를 알고 싶었다. 리어 왕에서 가장 나쁜 것은 첫째 딸이 아니라, 돈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리어 왕이 아닌가. 그리고 리어 왕이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 알면서 모른척, 그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위해 고고함을 지키려 했던 코델리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