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봄밤 2014. 11. 16. 20:05




영화가 끝나자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다. 빨간 공단의 의자가 불빛마다 드러났다. 긴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고 일어섰다. 하나 둘씩 빠지는 것이 아니라 통로를 길게 서 있다가 한꺼번에 빠졌다. 빈자리마다 검붉은 음영이 꽂혔다. 의자는 만질 수 있었고 빨려 들어갈 것 같았던 우주는 닫혔다. 이것 봐. 이건 영화야.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위로 떠오르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나였다. 의자를 만지고. 동생이 생각났다. 벗어놓았던 외투를 찾아 꼭 봐. 하는 문자를 보내두었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뭉클했는가 하는가는 영화와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호류사에 갔던 여름을 생각하고 있다. 구름이 뭉게뭉게 바다에서 솟았다. 기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21살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창밖의 구름을 보면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팔을 톡톡 쳐서 구름을 보라고 했다. 입술을 벌린 옆 얼굴도 잘 기억하고 있다. 함께 와주었던 그 역시 잘 생각이 난다. 샌들에 튼튼한 발이 잘 드러났다. 말이 별로 없는 입이었고 고개를 돌리는 턱선이 말끔했다. 나는 잊지 않겠다는 그날의 다짐을 기억하고 있다. 소원이라도 빌어둘걸. 그때 내가 바랐던 것은 그저 이 풍경을 잊지마. 였던 것 같다. 우주를 돌던 영화는 내 생각으로는 떠올릴 수도 없는 5차원을 통과해 결국 믿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다는 말을 세 시간 가까이 꾹꾹 눌러서 전해주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하찮거나 부질없어 보이는 생의 면을 뒤바꾸는 힘이 있었다. 나는 나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아무도, 나조차도 하지않는 숭고한 말을 전해주었다. 우주를 사이에 두고 전하는 말은 그 뿐이다. 너는 다시 너로 의자에 앉아있겠지만 이곳을 나가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키우고 믿으라. 그것을 이룬다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라는 것을. 무엇이 되고 안되고는 그것을 믿어왔느냐와 믿지 않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는 것이지. 나는 그저 한 발 한 발 살 수 있을 뿐이다. 배가 고프니 닭곰탕을 먹으러 가자. 여자 혼자 들어서자 아버지를 돕는 아들은 깜짝 놀랐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예쁘게 담아주었다. 내 이후에 어떤 커플이 들어왔다. 여자는 목도리를 벗으며 이것 저것 말해주었다. 닭곰타과 닭칼국수를 먹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음엔 닭칼국수를 먹어봐야지. 


팜플릿을 가져와 파일 맨 뒤에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