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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오분

_봄밤 2014. 9. 22. 13:36




새벽 두시 오분. 


봄, 보고프다,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고 오초 정도 망설였다. 이 문자를 보낸 그녀의 두시 오분을 지켜줘야 할까. 두시 오분이라는 시간에 자겠지, 안심하고 보냈던 마음을 놀래키고 내가 진짜 있어야 할까. 둘 사이에서 고민하고 일 분 뒤. 나는 창 위로 나타났다. 제제, 나도 보고싶어. 




오랜만에 소식을 올린 다른 친구의 카카오스토리에 내 사진이 떴고, 정말 보고 싶던 얼굴이 나타나서 울 뻔했다고 했다. 나는 '울었다'가 아니라 '울 뻔했다'는 말이 무척 좋았고, 그 말을 담느라 또 잠시 있어야 했다.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나를 천천히 설명하는 말들은 너하고 있었던 스물 두살로 금방 데려갔다. 내가 너와 함께 지나온 날들과 그날의 바람을 떠오르게 해서. 그때도 충분히 나 행복함을 알았지만 지나와 여전히 그러함을 알려주었다. 멀리, 오래 떨어진 아이를 찾듯 사진이 더 없느냐며 물었고, 나는 최대한 좋은 얼굴의 사진을 골라 열심히 보냈다. 여긴 연습실이고, 밴드를 해. 여기는 담양 자전거길. 또 여기는... 네가 내 얼굴을 찾는 동안 나는 네 딸 사진으로 너를 보고 있었지. 네 얼굴이 꼭 똑같이 들어있고 이제는 딸이 둘이라서 두 명에게 간 네 얼굴을 살피는 것도 신기해서. 내 얼굴은 내 위로도 충분히 떠오르지 못하는데 말이야. 


언젠가 형은 이런 말을 했어. 이 얘기 잊지 않으려고 네게도 말했었지. 나는 봄, 네가 설사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무조건 네 편이야. 너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니까. 무조건. 네 편이야 잊지마. 나는 그 앞에서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형, 나는 그런 말 처음 들어요. 하니 돌아오는 말은 나도 이런 말 처음해봐. 너니까. 내가 이런 말을 들었다며 신기한 눈으로 네게 말하던 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분기 어렸던 표정을 기억해. 고마워, 웃으며 대답하던 얼굴이 너를 오래 기억해. 


보고싶은 얼굴이 나타나서 울 뻔했어. 


어제 꿈에 썪은 두부가 깔려 있는 트럭을 탔어. 두부를 던지고 앉았지. 댓발로 만든 방석을 들추자 켜켜히 쌓여 있었어. 썪은 두부가. 운전기사님은 그걸 몰랐고 어쩌면 모른체 했는지 모르지, 나 또한 던지고 아무렇지 않게 앉았으니까. 꿈에 일어나 한동안 멍했어. 그런건 아무곳에도 없었지. 설사 앉았어도 아무일 없었을지 모르지. 갑자기 네 딸이 생각났어. 내게 온몸으로 기어오던 네 첫째 딸,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라 안절부절하던 그때의 내가 생각났어.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밥 공기를 뒤집어 엎고 그것을 주우며 온몸으로 웃던 네 딸을, 나는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른채 엉거주춤한 팔을 내놓고 그 팔에 참 잘도 엉겨서 내 허벅지를 마구 밟으며 침을 한데 뭍히고 갔던 그날을 너는 떠올릴 수 있을까. 그날의 아이는 이제 네 옷을 골라준다고 했지. 아침에 입을 옷을 펼쳐놓고 정해 입는다고 했지.


보고싶은 얼굴이 '나타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 대답만은 한결 같다. 나는 건강하고, 나는 잘 지내. 나는 그때 뭐가 무서워서 네 둥근 배를 한 번 안아주지도 못했구나. 내 손은 언제나 그랬듯 차가워서, 임신선이 뚜렷한 네 배 위에 올릴 수 없었어. 서운함을 뒤로하고 그 배는 이제 두 명의 아이를 낳았구나. 두 개의 흉은 잘 아물고 있는지. 그날에 대한 이유는 되지 않겠지만 언젠가 노회하고 술에 거나한 상사가 내 손을 잡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 '따뜻하다'였어. 도무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지, 너 아다피시 웬만한 체력의 나는 한 손으로 안경을 날릴 수도 있었을텐데 말야.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째서 따뜻하다였을까. 알 수가 없어. 그 뒤로 왜 나는 따뜻함을 먼저 생각했는지 생각하느라 그가 귓속에 무슨 음담패설을 쏟는지도 몰랐었어. 그 다음에 든 생각은 불쌍함이었어. 모두가 보고 있었고, 그러고서도 빠져나오지 못한 손은 먹다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어. 물론 동정이 있었겠지. 그러나 동정이라는 거대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어. 혹시라도 누군가의 온기로 온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변온의 나를 설명하는 것일까 하는 의혹이 남아. 


나는 이 의혹을 깨끗이 풀고 싶구나. 그런게 아니라도 나는 충분히 따뜻한 걸 아는 사람이라고 네가 말해줬으면 좋겠지. 봄이는 봄답게 살고 있구나. 하는 말에 나는 잘 있는 것 같지. 어제 새벽 눈은 무척이나 감겼고 아침이 무거웠지만 나는 어느때보다 반가운 인사를 동료들에게 했어. 우리가 제대로 만나지 못한 시간이, 울울하던 나무의 색을 다 빠뜨리는구나. 은행이 떨어지는 냄새를 피하지 않는 날들이야. 계절을 마주보고 있어. 이틀의 숙취에도 수십명이 쏟아져 나오는 강의실 저편 벤치에서 앉아 너를 한 눈에 알아내던 그때의 나처럼. 나는 여전히 잘 웃어. 알고 있니? 네 딸들이, 너를 점점 닮아가, 기다리면 나는 스물 두살의 너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