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열한시 반_최호일
_봄밤
2014. 8. 9. 03:16
열한시 반
최호일
열한시 반에 누가 보내준 것 같은 봄이다
누가 버린 것 같은 열한시 반이다
잠깐이면 돼
빵을 먹고 손을 뒤에 감추고
시간이 다가와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을 놓고 갔다
그것을 주웠고 손에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시간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물이 되는 시간
나이를 알 수 없는 염소가 이쪽을 보는 시간
바다 깊은 곳에서
비가 내리고
멸치가 시간을 발명하고 담겨 있던 접시를 버린다
멸치가 멸치의 머리를 버린다
백 년 후의 기차를 예약하고
껌을 씹으며 그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갈 때
열한시 반이 완성된다
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니고
그때 맡았던 기다랗고 둥근 빵냄새거나
빵이었던 기억이 난다
최호일, 『바나나의 웃음』, 문예중앙, 2014.
트랙백이 실패하네요. 실패하는 밤, 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닌 날
백 년 후의 기차를 예약하고/껌을 씹으며 그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갈 때/열한시 반이 완성된다
멀리, 당신 있는 곳으로 날아가 마침내 우리의 열한시 반이 완성되는 날을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