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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맛>후기

_봄밤 2025. 6. 24. 15:37

최근에 <당신의 맛>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최근 흥행한 요리 대결 프로 <흑백 요리사>의 요소가 여기저기 잘 가미되어 있으면서 서울과 지방, 미디어와 대기업,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서울의 푸드 대기업 아들 둘이 가계를 잇기 위해 별을 먼저 따와야 하는 레이스를 달린다. 한식으로 시작한 기업이 쓰리 스타라, 별이 거기 있으니까 따야한다는 심심한 목표다. 이들이 기업을 불린 비결 중 하나는 전국의 맛집 레시피를 빼오면서 원래의 맛집은 망하게 하고, 프랜차이즈화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루틴화 되어 있다. 그 와중에 둘째 아들(강하늘)은 전주의 한 셰프(고민시)의 레시피를 빼올 요량으로 가게에 침투하고, 처음 뜻과 다르게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셰프와 셰프와 함께 하는 가게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도를 솔직하게 밝히거나 그것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자신이 몸담은 기업이 레시피를 뺏아가는 걸 막지 못하고 셰프와 관계는 완전히 끝장이 나고 만다.

 

이 파국은 처음부터 예상이 되었는데, 그는 중도에 그것을 돌이킬만한 근거를 찾지 못한다. 그것을 밝혔을 때의 파장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점도 그가 솔직해지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회사가 레시피를 뺏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지만, 당연히 막지 못한다. 그는 폐인이 되는데, 아마 그것까지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셰프는 큰 충격을 받아 절 속에 들어간다. 셰프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자기 주위에서 얼짱대는 대기업 놈을 일하게 해준 것 밖에 없다. 셰프는 그를 좋아했지만, 그와의 관계를 다시 이어나갈 수는 없다.  

 

여기까지가 8화-9화의 이야기이다. 어쩌려고 하는 심산으로 보다가 여기까지 도착해서 끝장난 그 둘을 어떻게 둘 것인가 궁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이 다시 함께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것이 아까 그 대기업이다. 다 털어간 그 업장의 마지막까지 뺏으려고 판을 만들고, 그들은 남아있는 것을 더 뺏기지 않도록 다시 판에 올라가, 다시 한 편에 서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처음부터 가치관도 다르고 불호감 투성이었던 그를 셰프가 왜 좋아하게 되었느냐는 점이다.아무래도 자신의 요리를 알아봐 주어서이려나. 극중 인물 중에는 자신의 막걸리를 만든 신춘승(이름도 너무나 리얼한)이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터전을 나와 저만의 구르는 재주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곁에 있고 싶은 이유는 인정과 존중 때문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