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_문학동네 시인선 184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개와 눈과 아이는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전히 날뛰는 힘을 갖고 싶어서
눈 녹인 물을 내 안에 넣고 싶었다
차갑고 뻑뻑한 팔을 주무르면서
떠난 개들이 눈 쌓인 그릇을 치울 수 있다면
소의 농포를 환부에 슬쩍 바르고
키스하고
이민자와 손을 잡고
감자에 뿔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설편처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인다면
모든 목줄이 훌라후프로 커다래지겠지
죽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냇물이 달리고
쫑긋쫑긋 산맥이 서서 목덜미 터지고 흙속에서 더덕이 다리를 뻗을 때
네 어둠 속의 육상을 보고 있다
짓무른 뒷목에 손을 얹은 채
차가운 감자를 갈아서 눈처럼 바른다
네 캄캄한 방문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나는,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
꽃술을 만지던 손끝으로
배꼽을 파면서
입이나 귀에서 백합이 마구 펴면 좋겠다!
철조망 사이로 약속을 걸고 지문을 뒤섞어
민증이나 국경 따윈 꽃처럼 웃으며
발 없는 말로 말 없는 귀로 뿔 없는 소로
개화전선은 탄산처럼 북으로 넘치고
나는 자꾸 눈썹이 새처럼 날아갈까봐
무거운 장화를 신고 너와 입을 맞춘다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눈 밟는 소리에 개들은 심장이 커지고
그건 낯선 이가 오는 간격이니까
대문의 집은 입술, 벨을 누를 때
세계는 온다 날갯짓을 대신하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전문
이 시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우선은 처음이다.
'개와 눈과 아이는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전히 날뛰는 힘을 갖고 싶어서'
화자는 늙은 사람이다. 관절이 뻑뻑하고 개 밥그릇도 치우지 못한다.
개들은 떠나고, 밥그릇에는 눈이 쌓였다.
그 다음은 여기다.
'감자에 뿔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설편처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인다면'
이걸 생각하는 화자는 아마도 젊다.
감자에 뿔이 자라면 기댄 감자가 조금씩 무너지면서 들썩인다. 그건 감자가 아주 많은 집이고 감자를 열심히 먹지 않은 집이고 나이가 어려서 집에서 나와 생활하는 이에게 집에서 보내준 선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성인이다.
그 다음 문장은 잘 이해가 안되지만 내 생각에는, 그 박스채 감자를 쌓아놓고 한 켠에서 자는 나이 어린 어른과 애인의 일일이 아닐지. 감자에 뿔이 자라거나 말거나 배고픔보다 먼저 오는 사랑을 나누자. 그건 젊으니까 가능한 일.
그 다음도 역시 좋다.
아무 상관없이, 묶여 있던 목줄이 훌라후프처럼 커다래지고, 개들은 혀를 빼물고 달린다.
"모든 목줄이 훌라후프로 커다래지겠지
죽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냇물이 달리고
쫑긋쫑긋 산맥이 서서 목덜미 터지고 흙속에서 더덕이 다리를 뻗을 때
네 어둠 속의 육상을 보고 있다"
그래서
개들은 자유롭다. 혀를 빼물고 냇물이 달리는 부분은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이상한 부분은 바로 다음이다.
"그리고 나는,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
꽃술을 만지던 손끝으로
배꼽을 파면서"
이 부분은 성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그게 산뜻하지 않다고 할까.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 하는 부분.
그리고 이 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다음이다.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눈 밟는 소리에 개들은 심장이 커지고
그건 낯선 이가 오는 간격이니까
대문의 집은 입술, 벨을 누를 때
세계는 온다 날갯짓을 대신하여"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미래가 빛나서" 부분까지만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개들의 심장이 커지고 낯선이가 오는 간격까지 바라볼 때, 키스가 타인에 대한 환대로 확대된다. 하지만 지나친 비유이고, 지나치게 희망적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이보다 낭만적으로 키스를 장려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또 주목할 것은 '가장 투명한 부위가 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이라고
시를 주어로 두어 힘을 주는 부분이다.
감자에 싹, 사랑해, 키스, 개 등 사랑스러운 모든 것을 불러왔지만
그중에서 시를 가장 사랑하고 마침내는 시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미래가 빛나서'로 읽히고 있다.
모른 척하고 싶은 어둠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괜찮을거라는 말로도 들려.
어쨌거나 잘 될거라는 낙관이 우리에겐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