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살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맨살로 간다면 분명히 다치겠지. 이렇게 타는 마음은 예쁘고 환해서 주위에 있고 싶지만 가까이 가기에는 좀 위험해 보인다. 화상은 언제나 두렵다. 자고 일어나도 이렇게 환하게 타고 있는지 본다. 언제가 꺼져버리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언젠가' 뿐이니까 이 마음의 끝을 반쯤은 이미 알고 있다고 해야 한다. 혹은 어쩌면 오래전에 멸망한 별처럼 이미 끝나 버린 마음을 환상처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
내가 보게 될 것은 반드시 마침내 재 같은 것이어서, 나는 벌써 어둡고 사람이 없는 수북한 재의 바닷가에서 나는 나뭇가지로 하트 따위를 그리거나 내 이름자를 쓰고, 또 다른 이름을- 뭐였는지는 알지만 마침내 쓰지 않기로 다짐하는 일을 생각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스산한 풍경에 미리 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재를 보여주지 않는 저 마음은, 마침내는 거대한 재의 산을 보여주고 말게 될 저 마음은, 자신이 끝내 보여주게 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타고 있다. 처음에는 살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예의 바르게 말해서 가장 좋은 살을 뭉텅뭉텅 내주었더니 그는 그걸 벌써 다 먹고 이제는 뼈를 좀 줄 수 있겠느냐고 웃으며 서 있다. 마음과 시간을 아낌없이 다 먹고 더 많은 마음과 시간으로 내 앞에 매일 매일 서는 사람. 이제 내가 내줄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다 써서 매일매일 과로한다.
그와 손을 잡으면 내 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없었던 손처럼 사라지고, 안으면 나는 겨우 두 팔만 살아남고, 나는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그에게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