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모양과 눈사람 모양의 컵
뚜껑이 있는 트리 모양의 컵과 눈사람 모양의 컵을 샀다. 한눈에 귀여웠기도 했고, 크리스마스가 곧이기도 했고, 여기에 코코아를 타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분명히 이 컵을 두 손으로 쥐게 될텐데, 그러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생들은 타박했다. 설거지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초등학생들이 이런 컵에 관심있을까? 언니 좋아서 산 거아니고... 걱정이 된 나는 결국 다른 아이템을 검색했다.
'초3 선물' '초등학생 여자' 그렇게 알게 된 것이 '핸드폰 가방'이었다. 핸드폰을 넣을 수 있는 보조가방인 것 같은데 인기라고한다. 수많은 상품평을 읽었다. 초1에게는 딱이지만 초3은 유치해하네요 라는 댓글에서 역시 유치하구나... 멈췄다가 조잡하지만 예쁘다는 평에서 안절부절하다가 당장배송을 검색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나는 혹독한 평가를 받은 컵 두개를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친구 선물은 따로 준비했다! 멋진 향이 나는 바디워시였다. 이렇게 비싼 바디워시는 처음 사보기 때문에 약간 의기양양한 마음이었다. 씼을 때 힘듦도 약간 씻겨 나가는 것 같다. 너의 피로가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네가 마중을 나왔다. 운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차를 타본적이 없었을텐데, 그러니까 처음 본 모습이었다. 너의 집에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했던 사람들 얘기를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대충의 이름을 불러보니 시간은 벌써 밤 12시였다. 연락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그건 할 수 없었다. 내일 해야지 다짐했지만 다음날이 되니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그때 여자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은행원과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내게는 그런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몇 사람은 네가 좋아한 사람들이었고 몇은 내가 좋아한 사람들이었다. 빈 곳이 많은 이야기도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많은 선배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정보는 고작 '머리가 크신 분'정도였다. 너와 자주 이야기했던 벤치는 기억하지만 거기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얘기를 했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어제 술을 깨거나 오늘의 수업이나 내일 모레의 약속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얼마나 불투명하고 확신없는 미래가 있었는지, 그걸 다 토로하느라고 그 벤치에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아....그랬구나. 라고 해도 기억은 나지 않았다.
너의 아이들은 기회를 틈타 우리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지가 너무 오래되었고 초등학생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긴장했었지만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걱정과도 무색하게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으며 귀여워했다. 그중에 눈사람이 인기가 더 많았다. (내 눈에는 트리 모양의 컵이 더 예뻤다) 큰 아이가 동생에게 눈사람을 양보했다! 그리고 정말로 거기에 코코아를 타먹었다. 물론 설거지의 어려움은 걱정되었다. 아이들은 한자를 섞어서 이야기 할 줄 알았다. 전망, 태도, 경향. 엄마가 제일 친했다고 했던 그 이모야? 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하니까 눈에서 별을 내면서 웃었다. 너의 앞니의 톱니같은 굴곡을 두 아이가 모두 닮았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아이들이 별명을 짓는 방법이 이름에서 비롯되는 유구함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자신의 별명은 유과, 동생의 별명은 무엇, 친구의 별명은 이것... 별명에 따라서 관장하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는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놀랐다. 미디어에서 보았던 무서운 초등학생이 아니라 순진하고 무구하면서도 서울의 집 값이 비싼데 어떻게 살고 있냐고 걱정하면서 내가 사준 선물이 너무 비싼 건 아닌지 또 걱정하는 아이들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고 서울 집값이 비싸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상관이 없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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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를 함께 했다. 집에 오면서 나는 혼자였다.
나는 혼자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고자 한다면, 내 주위는 고요할 것이다. 너의 혼자 아님과 너의 뜻과 관련없이,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네게서 자라고 있는 다른 시간들. 이미 너의 어깨만큼 자란 시간들. 그게 너를 기쁘게 하기를 바랐다. 그건 내가 아마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일 터였다.